“박찬호에게 아인슈타인 되라는 한국 부모님들 눈뜨는 것이 우선”

입력 2022-11-10 04:04
폴 김 미국 스탠퍼드대 교육대학원 부학장은 최고기술경영자(CTO)를 겸한다. 기업이 아닌 대학의 CTO는 생소한데, 그가 스카우트되면서 테크놀로지 개발과 학생 창업 지원 프로그램 등의 혁신을 하겠다고 제안해 직접 만든 직함이라고 한다. 21세기에는 직업을 만드는 창직 능력이 필요하다는 자신의 주장을 실천한 셈이다. 한빛비즈 제공

“저는 불량품이었죠, 한국의 평가 관점에서는요. 학교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맞았어요. 제가 하위 1%였기 때문에 그런 학생들이 친구이자 동료로 보여요. 내가 관심 있고, 내가 좋아하며,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을 찾도록 돕고 싶습니다.”

폴 김(52·김홍석) 미국 스탠퍼드대 교육대학원 부학장 겸 최고기술경영자(CTO)는 한국에서 보낸 초·중·고 시절 반에서 60명 중 58등이었다고 스스럼없이 밝히곤 한다. 자신처럼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학생들의 잠재력이 과소평가되고 묻히는 것이 안타까워서이다.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햄버거도 주문하기 힘든 영어 실력으로 혈혈단신 미국으로 건너가 중국 식당과 세차장 아르바이트, 컴퓨터 수리 등으로 학비를 벌어가며 컴퓨터공학 학사와 교육공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난 5일 화상으로 그의 입지전적인 인생 역정, 실리콘밸리의 모태인 스탠퍼드대의 교육, 미래교육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한국에서 ‘양’‘가’만 받던 열등생이 미국에서 A학점의 우등생이 될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이었나요.

“우등생이라기보다 살아남을 수 있었던 요인이라고 말하는 게 적절할 것 같아요. 저는 제 역량과 조건을 불평하는 대신 그걸 바탕으로 새 역량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게 뭘까 많이 생각했어요. 좋은 결과가 안 나와도 그게 끝이 아니라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어요. 오렌지 맛을 만들었는데 레몬 맛이 나왔다면 레몬으로 새 아이스크림을 만들든 친환경 청소제를 만들든 역발상을 하는 성격이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미국 학생이 1시간 공부하면 10시간을 하겠다는 각오로 공부했다지만 노력만으로 가능한 성취였을까 싶어요. 타고난 머리가 좋았던 건 아닌가요.

“저는 생각이 느리고 이해하는 데 남들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편이에요. 남들이 로켓을 타고 순간이동을 할 때 저는 열차를 타고 털털거리는 철로를 천천히 가야 했던 것 같습니다. 남들보다 한 번 더 보고 더 시간을 들여서 비슷하게 해낸 것 같아요.”

-‘나의 태도는 확률을 이긴다’는 말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제가 나이 오십에 경비행기 자격증을 따보니 비행에서도 제일 중요한 것이 자세계예요. 비행기의 자세만 쓰러지지 않으면 추락하지 않습니다. 확률적으로 불가능해 보여도 내 태도를 바르게 잡고 있으면 어떻게든 목적지에 도착하거든요. 또 하나는 불편함, 불안, 두려움을 피할 수 없으면 차라리 친구로 만들어 버리는 거예요. 편안하면 발전이 없어요. 내가 뭘 하면 불안하고 두렵고 불편한지 찾아서 자꾸 도전하다 보면 그게 별게 아니었다는 걸 깨닫게 되더군요.”

-곧 한국의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다가옵니다. 수능만을 목표로 하는 한국 교육에 대한 아쉬움을 여러 번 표하셨죠.

“스탠퍼드를 졸업하고도 할 일이 없는 학생도 있고, 행복하냐고 물으면 대답 못하는 친구들이 많아요. 명문대 그다음을 찾으려면 ‘무엇’을 ‘어떻게’보다 ‘왜’라는 질문을 먼저 해야 한다고 봅니다. 더 행복할 수 있는데, 더 즐겁게 살 수 있는데, 똑같이 시작하고 똑같이 생각하고 똑같은 길을 가게 되는 건 한국 교육이 그래서인 것 같아요. 저는 한국 교육의 영향을 별로 못 받았기 때문에 다르게 생각하게 된 경우겠죠.”

-한국 교육을 가리켜 ‘박찬호에게 아인슈타인이 되라고 한다’고도 하셨는데요.

“부모님들이 눈뜨는 것이 우선이라고 봅니다. 타고난 관심과 능력은 모두가 다 다릅니다. 교육이란 관심 있고 좋아하고 즐겁게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잘하도록 돕고 이끌어 주는 것입니다. 좋아하지도 않고 보람도 없고, 잘하지도 않는데 평생 같은 일을 한다면 행복하지 않거나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될 수 있어요. 어른들도 마찬가지예요. 저는 우리 모두에게 숨겨진 능력이 여러 개 있다고 봅니다. 그 잠재력을 끊임없이 찾아내는 거죠.”

-자녀들을 키우실 때는 어떠셨나요.

“두 딸이 있는데 대화, 자기주도력 개발, 동등한 인격체로서의 존중이라는 단어들이 떠오릅니다. 하고 싶은 것을 하라는 주의이고요. 스스로 배우고 느끼고 판단하고 결정하고 책임지라는 거죠. 부모가 할 일은 인내와 기도입니다. 저는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은 ‘함께 더 나은 세상을 행복하게 살아가는 지혜를 얻는 여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학원 열 곳을 보내는 것보다 봉사의 기회 하나가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말이 공허하지 않은 것은 그가 행동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2005년 멕시코에 집 짓는 봉사활동을 갔다가 학교가 없는 마을의 아이들을 만났다. 그들에게 교육의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생각에 2009년 비영리 국제교육재단 ‘시즈 오브 임파워먼트(Seeds of Empowerment)’를 세워 모바일 학습 프로그램인 ‘포켓 스쿨’과 질문형 학습 솔루션 ‘스마일’, 개발도상국 아이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만드는 ‘천일(1001) 스토리’ 등을 진행했다. 스마일은 2016년 유엔 미래교육 혁신기술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는 지금까지 20여개국 오지의 아이들을 만났고 내년에도 남미와 중동의 교육 사각지대에 있는 아이들을 찾아갈 계획이다.

폴 김 부학장은 오지 교육 봉사를 통해 20여개국의 아이들을 만났다. 김 부학장이 시리아 난민, 인도의 어린이들과 함께한 모습들. 폴 김 제공

-혁신은 질문에서 시작된다는 게 부학장님의 핵심 주장인데, 한국의 교육 환경에서는 요원해 보입니다.

“스탠퍼드 교수 중에 큰 방석에 누워서 수업하는 분이 있어요. 자유롭게 질문하고 토론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거죠. 학생들도 편하게 앉거나 누워서 대화하더군요. 질문 문화의 정착은 어렵습니다. 제가 한국 대기업 임원 워크숍을 한 적이 있는데 질문을 할 때 자기 이름이 드러나지 않았으면 좋겠대요. 질문에 대한 두려움, 그게 현실인 거예요.”

-스탠퍼드 학생 5명 중 1명이 창업한다는 통계가 기억나는데요, 스탠퍼드가 창업의 요람이 된 학풍은 무엇일까요.

“스탠퍼드의 핵심 키워드는 다양성 존중, 과감한 혁신 도전, 글로벌 창업정신이라고 봅니다. 저희는 학생들이 스스로 디자인하는 수업도 있어요. 한 학기 동안 어떤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어떻게 평가를 받겠다는 제안서를 내고 사인을 받으면 그게 수업이 되는 거예요. 학교 커피숍에 가도 혁신과 창업이라는 말이 들려요. 그런 공기를 마시다 보면 동화될 수밖에 없죠.”

-실리콘밸리는 서로 공유·협력하는 사회이고 스스로 문제를 찾아서 해결하는 인재를 뽑는다고 하셨는데, 한국 교육이 양산하는 게 자율성보다 시키는 일 잘하는 사람이고 팀플레이를 가르치지도 않죠.

“수동적인 사람은 정말 같이 일하기 힘듭니다. 스스로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할 기회를 학교에서 가져보지 못했기 때문이죠. 팀플레이도 익숙하지 않아서죠. 가만 보면 다 교육이 문제이자 솔루션이에요. 아이들이 말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길러야 할 역량은 소통, 협력, 비판적 사고, 창의성, 다양성 존중, 긍휼한 마음입니다. 특히 미래 세대에게는 AI가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인 창의성과 인성교육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실제로 퇴사를 하지 않지만 최소한의 업무만 하는 ‘조용한 사직(quiet quitting)’이 한국에서도 화제인데요, 부학장님 신념과는 거리가 있는 태도 아닌가요.

“원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은 좋은데 ‘What’s next?(다음은 뭐죠?)’가 있어야겠죠. 한국 젊은이들의 꿈이 건물주라고 들었어요. 건물주 되는 것, 좋죠. 그럼 어떻게 될 것인지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워야 하잖아요. 그런데 금수저로 태어나지 못했으니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이다, 이런 얘기는 아쉽죠.”

-사우디아라비아 국립 온라인대학교와 두바이의 미래대학교 설립에도 관여하고 계신데, 두바이의 미래 대학이 궁금합니다.

“모든 학생이 창업을 하면서 졸업하는 창업 중심 대학입니다. 전체 교과 과정이 기업가정신 중심으로 디자인되는 모델을 정립했어요.”

-미래 대학이라고 해서 테크놀로지 중심이 아니라 교육의 콘셉트 자체를 바꾼 거로군요.

“미래의 학교는 개개인의 다양성과 독창성을 최대로 고려해 개별 맞춤형 여정을 제공해야 합니다. 티칭이 아니라 코칭이 중심이 되고 창의 창작 창직 창업이 일어날 수 있는 공간이고요. 반면 한국 상황은 개개인의 관심과 역량이 무시되는 ‘학교공장’을 운영하는 시스템이라고 봅니다. 그 과정은 다 같이 겪는 고난의 패키지 여정이죠. 아주 오래됐지만 남들도 다 그렇게 하니까 아닌 걸 알면서도 그저 따라갑니다. 잘못된 시스템에 충실한 건 잘못된 미래를 위한 교육을 열심히 시키는 것이에요.”

-묘비명에 ‘자기의 역량을 최대한 끌어내고 확인해보고 간 사람’으로 적히고 싶다고 하셨는데요, 그 열정의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어릴 때 꽃동네에 봉사활동을 갔다가 ‘스스로 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그것은 축복입니다’라고 큰 바위에 써 있는 걸 봤어요. 저는 그 이상의 힘이 있으니 엄청난 축복을 받은 셈이죠. 그 축복을 의미 있는 일에 잘 활용하다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권혜숙 인터뷰전문기자 hskw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