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는 꽃그림과 풍경화를 많이 그렸어요. 요즘은 전동휠체어 컨트롤러에 꽃을 접목한 작품을 그리고 있어요. 전동휠체어는 제가 세상과 소통하게 해주는 유일한 존재거든요. 저를 어디든지 데려다주는 고마운 존재죠.”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손 대신 발로 부드러운 붓놀림을 하는 그는 뇌병변 1급 족필(足筆)화가 이윤정(49) 작가다. 조산으로 태어날 때부터 장애를 갖게 된 이 작가는 왼발만 간신히 사용하는 최고 단계 중증 장애를 갖고 있지만, 꿈을 포기하지 않고 왼발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장애인 활동지원사의 도움을 받아 외출도 자주 한다.
“장애가 있다고 세상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지 못한다면 그림을 그릴 때 제가 생각하는 표현이 전달되지 않아요. 아이디어를 찾고 싶을 때는 외출을 하죠.”
이 작가 발가락 사이의 붓이 지나가면 캔버스 위엔 아름다운 꽃이 활짝 핀다. 몸은 힘들지만, 하루 서너 시간 꿋꿋하게 작업하는 모습에서 프로의 면모가 드러난다.
구필(口筆)화가 임경식(45) 작가는 손이 아닌 입으로 그림을 그린다. 그는 19세 때 불의의 교통사고로 지체장애인이 됐다. 사고 이후 힘든 시간을 보내다 우연히 그림 그리는 동영상을 발견해 입에 붓을 물고 흉내를 내봤다. 동영상을 스승 삼아 매일 그리고 또 그렸다. 현재 한국구족화가협회 회원으로서 각종 미술대회에서 입상한 것을 넘어 개인전까지 여는 전업 화가가 됐다.
“금붕어를 어항 바깥으로 꺼내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모습을 그려요. 휠체어에 갇혀 사는 저 자신의 꿈을 표현했어요.”
임 작가의 대표작은 ‘꿈을 꾸다’ 시리즈다. 물고기와 거북이가 소재다. 어항 속 금붕어와 거북이는 휠체어에 의지해 살아가는 임 작가 자신을 상징한다. 자유롭지 않은 현실과 달리 캔버스 속에선 물고기와 거북이를 통해 자유롭게 움직이는 모습을 담았다. 느려도 조금씩 꿈을 향해 나아가는 자신의 의지를 표현했다.
한국구족회화협회 배미선 대표는 “신체적 장애는 작가로서 걸림돌이 결코 아니다. 자신의 생각을 더 창의적으로 표현한다. 작은 캔버스에 희로애락을 담는 구족화가들의 작품이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고 예술성도 인정받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글·사진 이한형 기자 goodlh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