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배 공정거래조정원장은 공정위 내에서도 모두가 인정하는 법 이론의 최고 전문가다. 30년 이상 공정거래 정책을 만들고 시행한 경험을 토대로 2020년 펴낸 ‘공정거래법의 이론과 실제’는 공정거래 분야에 몸 담고 있는 사람들에게 필독서로 꼽힌다. 김 원장은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카카오 등 플랫폼의 독점문제에 대해 “(플랫폼업계의)혁신과 갑질은 종이 한 장 차이”라면서 “어렵지만 혁신은 살려가면서 독점의 폐혜를 막는 것이 현 공정위의 최대 과제”라고 밝혔다. 김 원장은 최근 서울 공정거래조정원 원장실에서 국민일보와 만나 조정원의 역할과 공정위의 나아갈 방향 등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털어놨다.
-‘카카오 사태’로 온 국민이 피해를 입었다. 대통령은 공정위를 콕 짚어 개선방안을 내놓을 것을 지시했다.
“독점이 직접적 원인은 아니지만 카카오가 독점이기 때문에 이번 사고가 더욱 고통스러웠다. 대체 플랫폼이 있었으면 피해가 많이 줄었을 것이다. 이러한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경쟁당국은 플랫폼 기업들이 독과점화되는 걸 사전에 막아야 하고, 독점을 이용해 불공정행위를 하면 이를 제대로 제재해야 한다. 다만 카카오가 카카오택시를 만들지 못하게 했으면 이번 사고로 피해입은 카카오택시 기사들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택시앱이 생길 당시에는 모두가 쉽게 택시를 부를 수 있다고 좋아했다. 이처럼 카카오가 재벌처럼 행세한다고 밉다고 앞으로 배달의민족이나 네이버 등의 다른 플랫폼의 기업결합을 막으면 더 많은 것을 잃게 된다. 정보기술(IT)업계의 혁신을 살리면서 이에 수반되는 갑질 등 문제를 막아야 하는 건데 쉽지는 않다. 혁신과 갑질은 종이 한 장 차이다.”
-공정위가 그런 일을 하기에는 현 정부 들어 위상이 약해졌다는 말이 있다.
“현 정부는 이념적으로 보수고, 자유를 강조한다. 그러면 경쟁당국의 조사가 줄어드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130년 경쟁법 역사를 가진 미국도 그랬고, 우리 정부도 보수와 진보정권을 오가면서 그런 경향을 보여왔다. 전 정부에서 대기업 사익편취 분야를 강하게 밀어붙였으면 이번 정부에서는 그쪽 집행이 약화될 수 밖에 없다. 그러면 모두 힘이 빠지느냐? 그렇지 않다. 현 정부의 공정위는 시지남용이나 카르텔 등 전통적 경쟁법 집행이나 플랫폼 불공정 문제에 좀 더 집중하면 된다. 어느 분야건 정부 기조에 맞춰 공정위가 실력을 갖추고 제대로 하면 된다.”
-결국 공정위가 실력을 키워야 하는데 현 정부들어 공정위 조직을 사건과 정책으로 2원화하는 것이 도움이 되겠나.
“입찰 담합 사건이 많아지면서 기존 담합에서 입찰 담합에 관한 정책을 새로 만든 것처럼 정책은 법 집행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다. 정책을 우선시할 경우 사건 노하우가 정책으로 연결되는 것이 약화될 우려가 있으므로 이 부분에 유의해야 한다. 사실 외부에서 공정위에 불만을 가지는 가장 큰 2가지는 사건 처리 늦는 것과 조사와 심판 기능이 제대로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사건과 정책 2원화도 필요하겠지만 조사 처리 속도를 높이면서 더불어 기능적으로 심판과 조사기능 분리를 좀 더 강화해야 한다.”
-공정거래조정원장으로 취임한 지 2년이 가까워 온다. 조정원 명칭을 진흥원으로 교체를 추진하려는 이유가 있나.
“공정거래조정원이 조정업무만 하는 게 아니다. 갑질을 막기 위한 예방활동을 하고 동의의결 관리감독도 한다. 동반성장지수도 평가한다. 그런데 조정원이라는 이름 때문에 국민들에게 다가가기가 어렵다. 불공정거래 피해를 사전에 예방하고 공정거래 문화확산을 하기위해 이름이 걸림돌이 되면 안되지 않겠나.”
-한 해에 조정건수가 3000건이나 되는데 조정을 맡고 있는 상임위원이 없다고 들었다.
“대한민국에서 분쟁 제도가 있는 조직은 모두 상임위원이 있는데 조정원만 없다. 조정원이 1년에 3000건을 처리한다. 한 해 예산이 연 110억원인데 우리가 조정해서 피해를 입은 을에게 돌려주는 돈이 1000억원 정도 된다. 100억원으로 1000억원의 효과를 주니 국가로서 남는 장사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정책에 이만한 게 있나. 조정은 우리가 제시하는 안에 신청인과 피신청인이 모두 응해야 한다. 그만큼 노하우가 중요하다. 그런 조직인데 이를 전담하는 조정위원이 없는 게 현실이다. 교수 등 전문가들을 비상임위원으로 활용하고 있는데 회의 개최에 어려움이 많고, 그만큼 조정기일이 길어질 수 밖에 없다. 한푼이라도 더 빨리 받고 피해를 구제받아야 할 을들을 위해서라도 상임위원 임명은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
-지금까지 가장 인상 깊었던 사건은.
“코로나19 사태 초기 마스크 대란 때 피해를 본 제조업체를 구제해 준 사건이 있다. 판매상이 제조업체에 약 110억원어치 물건을 주문했으나 마스크 가격이 급락하자 판매상은 손실 우려에 거래를 일방적으로 취소했다. 훗날 조정 신청을 한 제조업체는 일부는 현금으로 보상 받고 일부는 판매상에 마스크 상품을 저렴하게 공급하는 것으로 조정이 이뤄졌다. 어느 한 쪽 편만 들어서는 조정이 이뤄지지 않는다.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하다.”
이성규 경제부장, 임송수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