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달 24일 언론 카메라 앞에서 울먹였다. ‘제 분신’이라고 칭했던 김용 민주연구원 부원장을 구속한 검찰이 민주당사 내 민주연구원에 대한 2차 압수수색에 나선 날이었다. “국민이 이 역사의 현장을 잊지 말고 퇴행한 민주주의를 꼭 지켜주십시오.” 이 대표는 자신과 민주당, 민주당과 민주주의를 한데 묶어 “지켜 달라”고 민심에 호소했다. 민주당을 총동원해 검찰 수사에 반발하는 그를 두고 “이분도 참 재밌는 분”(진중권 광운대 특임교수)이라는 관전평도 나왔지만.
요즘 이 대표는 밤잠을 못 이루고 있을 것 같다. 얼굴 살도 많이 빠졌다. 왜 안 그렇겠나. 0.73% 포인트 차로 눈앞에서 대권을 놓친 데다 이젠 시시각각 다가서는 검찰의 칼날을 지켜봐야 하는 처지니. 대선에서 이겼다면 지금 수사를 받는 측근들은 검찰 조사실이 아닌 청와대에 앉아 있을 테고, 이 대표 본인이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법정에 서야 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이해득실 계산이 빠르다는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본부장이 “이재명이 명령한 죗값은 이재명이 받아야 한다”며 변심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대선에서 이겼다면 말이다.
그러나 현실은 완전히 다르게 전개되고 있다. 김 부원장과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구속됐고, 오랜 복심인 정진상 민주당 대표실 정무조정실장의 검찰행도 확실시된다. 이 대표 역시 본능적으로 이런 상황을 예상한 듯하다. 대선 패배 두 달 만에 보궐선거에 출마하고, 연이어 전당대회에 나서 당대표 자리에 오른 건 특유의 위기 감지 안테나가 작동한 결과라고 여기는 이들이 많다. 야인으로 허허벌판에 서서 로마 보병같이 압박해 들어오는 검찰을 맞기보다는 169석 의석으로 방어 성곽을 두르고 ‘야당 탄압’ 프레임으로 해자를 파 수성전에 나서는 게 그나마 승산 있다고 계산이 섰을 수 있다. “국민과 함께 끝까지 싸우겠다”는 선언을 보면 서초동의 수사를 자신의 앞마당인 여의도로 가져와 정치 투쟁을 통해 돌파하려는 것 같다.
다만 사안 성격과 명분, 실효성 등의 측면에서 이 대표의 대응 방식을 선뜻 수긍하기가 쉽지 않다. 대장동 비리 의혹과 쌍방울 유착 의혹, 성남FC 불법 후원금 의혹 등 측근 그룹을 겨눈 지금의 수사는 모두 지난 정부 때 시작된 것들이다. 어찌 보면 이 대표가 당면한 현 상황은 그때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데 대한 반작용이라 할 수 있다.
진행되는 양상을 보면 검찰이 막무가내로 밀어붙인다고 하기도 어렵다. 김 부원장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만 해도 법원이 체포영장·구속영장을 차례로 발부할 수준의 혐의 소명은 이뤄졌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탈원전, 태양광사업 등 지난 정부의 정책 결정 과정에서 파생된 의혹 수사에 비하면 이 대표 주변 수사는 개인비리 성격이 짙기도 하다. 지방 권력과 민간 개발업자들 간의 검은 공생 관계가 실재했다면 사안이 결코 가벼운 것도 아니다.
또 하나, 수사라는 열차는 일단 출발해 궤도에 오른 뒤엔 속도 조절은 있을지언정 결국은 종착지를 향해 달리게 돼 있다. 때론 수사팀 통제에서 벗어나 수사 자체의 관성으로 굴러가기도 한다. 이 대표 호소에 호응한 ‘개딸’들의 실력 행사나 거대 야당의 결사옹위 태세, 나아가 대통령의 개입으로도 멈춰 세우거나 방향을 틀기 어려운 단계로 수사가 접어들었다는 얘기다.
절박한 이 대표에게 ‘법정에서 결백을 밝히라’ 따위의 말은 통하지 않겠지만 현실적으로 칼자루를 쥔 쪽은 이 대표 쪽이 아니다. 이태원 참사 정국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면 검찰은 다시 움직일 테고, 이 대표는 또다시 결단의 순간을 마주해야 한다. 이대로 성곽 안에서 버틸 것인가, 단기필마로 성 밖으로 나가 맞설 것인가.
지호일 사회부장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