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6000억원가량 소요되던 정부 식량 비축 예산 지출 규모가 최근 들어 5000억원 미만까지 떨어진 것으로 파악됐다. 비축 예산은 정부가 공급 부족·물가 급등 등 비상 상황을 대비해 농산물을 수매·보관하는 데 쓰인다. 정부는 국내 작황을 고려해 지출을 줄였다고 하지만 수매 대상 일부 품목 가격 급등을 막지 못했다. 정부의 오판으로 기금 설치 목적인 ‘가격 안정’ 달성에 실패한 거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국민일보가 7일 안병길 국민의힘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농산물가격안정기금’ 지출 내역에 따르면 지난해 비축 지원 항목 지출액은 4928억원을 기록했다. 2020년(4757억원) 보다 늘기는 했지만 코로나19 이전인 2017~2019년 연평균 지출액(5918억원)과 비교해 규모가 큰 폭으로 줄었다. 정부가 농산물 수급과 가격 안정, 유통 개선을 목적으로 조성·운용하는 농산물가격안정기금의 핵심 지출 예산이 2년 연속 급감한 것이다.
기금 운용을 맡고 있는 농림축산식품부는 국내 작황을 고려해 농산물 수입을 줄인 점이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한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비축 지원 예산의 3분의 2는 수입산, 3분의 1은 국내산 비축에 쓴다”며 “2020년의 경우 고추 마늘 양파 등 채소류 수급 안정으로 1100억원 정도 수입산 수매 지출을 줄였고 지난해도 비슷했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 기간 동안 비축 대상 일부 품목 가격이 급등했다는 점이다. 국산 자급률이 약 30% 수준이라 수입 비축 대상 품목으로 선정돼 있는 콩의 경우 지난해 가격이 폭등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12월 콩 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적게는 2.9%에서 많게는 21.1%까지 뛰어올랐다. 2020년에도 비슷한 상황이 눈에 띈다. 국산 및 수입산 모두 비축 대상 품목으로 돼 있는 양파 물가는 2020년 1~12월 동안 전년 동월 대비 15.2~75.3%나 폭등했었다. 비축 지원을 통한 가격 조절에 실패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농식품부가 지난 9월까지 누적 4742억원을 비축 지원으로 지출한 올해도 물가 안정은 요원한 상태다. 소비량의 약 85%를 수입하는 비축 대상 품목 참깨 물가는 지난 1~9월 동안 전년 동월 대비 5.4~12.7%가 올랐다. 또 다른 비축 대상 품목인 무나 고추 가격도 지난 4월 이후 지속적으로 오르고 있다. 안 의원은 “국내 물가 영향 최소화를 위한 근본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세종=신준섭 박세환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