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때처럼 군중이 몰린다면, 여기가 가장 위험합니다.”
이태원 압사 사고 일주일이 흐른 지난 5일 오후 6시30분 서울 마포구 홍익대학교 인근. 이날 국민일보와 서울 도심 압사사고 위험 구역 점검에 나선 정창삼 인덕대 스마트건설방재학과 교수가 인파로 혼잡한 홍익로 3길 골목을 가리켰다.
서울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9번 출구 방면에는 홍익대 정문으로 가는 홍익로와 KT&G 상상마당으로 이어지는 길로 골목골목 술집과 음식점이 즐비하다. 3개 차선이 있는 홍익로와 달리 홍익로 3길 같은 골목은 차량이 한대도 겨우 지나가기 힘들 정도로 좁은 길이 이어졋다. 이 곳 골목은 도로 폭이 채 4m도 되지 않았다. 이태원 참사가 발생했던 해밀톤호텔 옆 골목 폭(3.2m)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골목 안에선 다른 행인들과 어깨가 부딪히기 일쑤였다. 골목을 지나는 사람 중에는 일행을 놓칠까봐 인파 속에서 겨우 손가락 끝을 잡고 일렬로 걷는 이들도 눈에 띄었다. 성인 한 명이 몸을 비틀어야 겨우 빠져나갈 수 있을 정도의 공간밖에 없었다. 정 교수는 “이렇게 갑자기 도로 폭이 좁아지는 골목은 이태원 참사 때처럼 병목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며 “골목 구간은 약 60~70평(198~231㎡)정도인데, 여기에 700~800명 이상 사람이 몰리면 통행은커녕 갇히게 된다”라고 분석했다.
정 교수와의 동행 취재에선 홍대입구 지하철역에서부터 위기 신호가 감지됐다. 그는 점검 시작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심각한 표정으로 9번 출구를 바라봤다. 홍대입구역 9번 출구쪽 KFC 앞은 젊은 세대들의 약속 장소다. 이 곳 앞에는 친구를 기다리는 이들이 주말 저녁 시간을 맞아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9번 출구를 나와 계단으로 올라오자, 인도는 기다리는 이들과 이동하는 이들로 정상적인 보행이 쉽지 않았다. 실제 인구혼잡도가 표시되는 서울시 실시간 도시데이터에는 오후 9시 무렵이 되자 ‘매우 붐빔’ 상태 메시지가 떴다.
지하철 출구에서 1m가량 벗어난 곳부터 거리 한쪽을 차지한 노점상들이 즐비했다. 지하철 계단에서 올라오는 인파에 더해 출구 앞 노점상들로 막혀 좁아진 보행로에, 지인을 기다리는 사람들과 건너편으로 가려고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뒤엉켜 있었다.
정 교수는 출구에서부터 50m 가량 이어진 노점상들을 손으로 가리키며 “(노점상이) 아무것도 아닐 것 같지만 노점상이 도로 폭의 2m 가량은 잡아먹는다”고 설명했다. 또 그는 “노점의 가장 큰 특징은 사람이 제일 많이 다니는 곳에 있다는 건데 그래서 더 위험하다”고 설명했다. 노점상이 설치된 뒤편에는 발전기와 짐들이 쌓여 인도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몰린 골목을 빠져나와도 혼잡에 따른 위험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앞을 지나던 사람들의 보행 속도가 갑자기 느려지더니 급기야 멈춰섰다. 근처에선 도로 보수공사까지 진행되면서 통행이 가로막힌 것이다. 일부 사람들은 인도 내 서있을 공간이 부족해 차도 경계석 아래로 내려가 신호를 기다릴 정도였다.
“이것 때문입니다.” 정 교수가 인도에 놓인 커다란 화분을 가리켰다. 곳곳에 설치된 화분은 지자체에서 미관상 일부러 설치해둔 것이었다. 정 교수는 “도로의 흐름을 고려하지 않은 설치물”이라며 “횡단보도 기다리는 사람들로 도로의 절반이 찼는데 공사한다고 공간을 또 빼고 갑자기 화단까지 가져다놨다”고 비판했다.
홍대거리 진입 이후에도 위험 요소는 곳곳에서 발견됐다. 정 교수는 가게에서 내놓은 옷걸이와 홍보 간판 등을 가리키며 우려를 표했다. 참사가 벌어진 이태원 골목보다 폭은 다소 넓지만 당시의 인구 밀집도라면 이곳도 위험할 수 있다는 얘기다. 정 교수는 “이미 3분의 1가량은 도로 기능을 상실했다”며 “사람이 많이 몰리는 날에는 이걸 치워야 보행 사고를 막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상습적인 인파 집중 지역인 이태원에서 대형사고가 발생한 만큼 서울 도심 곳곳의 도로 시설물 관리도 재정비해야 한다고 정 교수는 지적했다. 이태원이나 홍대뿐 아니라 한강공원, 연말의 명동 등 일상 속 공간에 대한 대비가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사용할 수 있는 데이터나 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해서 위험 경고 기준을 만들고 지자체에서도 이를 도입·활용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또 “대형 이벤트가 예상되면 지하철 무정차 운행으로 유입 자체를 줄이고 사람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재난문자도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글·사진 성윤수 기자 tigri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