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년도 전기요금 인상 폭과 시기를 놓고 고민에 빠졌다. 내년 초까지 5%대 고물가가 지속할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에서 ‘적자 공룡’ 한국전력이 회사채 시장에 미치는 불안감마저 커졌기 때문이다. 서둘러 전기요금을 올리자니 뛰는 물가를 잡기 어려워지고 전기요금 인상을 미루자니 자금시장 경색 문제를 풀기 어려워지는 딜레마에 빠진 셈이다.
6일 산업통상자원부 등에 따르면 한전은 다음 달 말 정부와의 협의를 거쳐 내년도 기준연료비 인상 계획을 내놓을 계획이다. 현행 전기요금은 기준연료비·실적연료비·기후환경요금 등으로 구성된다. 기준연료비는 최근 1년간 액화천연가스(LNG)·석탄·석유 가격을 기준으로 결정된다. 문재인정부는 기준연료비를 올해 4월·10월 각각 ㎾h(킬로와트시)당 4.9원, 기후환경요금은 올해 4월 ㎾h당 2원 인상하기로 지난해 말 결정한 바 있다.
기획재정부는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고환율과 국제유가 변동 등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서 전기요금 대폭 인상 계획을 밝히기는 부담스러운 탓이다. 더욱이 지난달 전기·가스·수도 가격은 1년 전보다 23.1% 오르며 물가 상승 압력을 크게 높였다. 공공요금 인상 계획을 바탕으로 ‘내년도 경제정책방향’에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담아야 하는 기재부 입장에선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전기요금 인상을 억누르고만 있기는 어렵다. 한전발(發) 자금시장 경색 문제가 시장 불안을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한전은 대규모 적자 때문에 채권 발행 없이 버틸 수 없는 상황인데, AAA등급 한전채가 시장에 쏟아지면서 한전채가 채권 시장 자금을 빨아들이는 문제가 발생했다.
결국 시장에서는 정부가 적절한 때 ‘전기요금 인상’ 시그널을 내보내야 한다고 본다. 한전 적자의 근본 해법은 전기요금 정상화이기 때문이다. 전기 요금이 ㎾h당 10원 오를 때마다 한전의 연 매출이 5조원 증가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전기요금 대폭 인상 카드를 당장 빼 들기 어려운 정부는 전력도매가(SMP) 상한제와 가격입찰제 도입 등 대안을 검토 중이다. ‘역대급’ 영업 이익률을 기록하고 있는 민간 발전사가 일종의 고통 분담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이유에서다. 현재는 글로벌 연료비 상승으로 고공행진 중인 SMP를 소매전기요금이 따라가지 못해 한전이 급증한 연료비를 모두 떠안는 구조다. 또 가격입찰제가 도입되면 발전사 간 경쟁을 통해 공급단가 인하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
세종=신재희 기자 j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