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간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결과를 장담할 수는 없지만 상·하원 모두 공화당의 우세가 예상된다. 미국 선거는 베트남 전쟁이나 9·11 테러와 같은 일부 예외를 제외하면 국내 문제가 핵심이다. 이번 중간선거도 최악의 인플레이션, 낙태 이슈, 메디케어, 증세, 복지, 이민, 범죄 등이 중요 의제다. 따라서 중간선거가 대외정책, 특히 대북정책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최종 목표를 내세우지만 워싱턴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사실상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고 부분 비핵화와 핵 군축 등에 나서자고 주창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윌슨주의에 기반한 국제주의 선봉에 서서 미국 주류 학계를 이끄는 리처드 하스 미국외교협회 수장도 지난달 북한을 핵으로부터 분리하는 것에 실패했다면서 군축을 통한 북한 핵탄두·미사일 수 제한과 상응 조치의 제재 해제를 주장한 바 있다. 미국 주류의 이런 판단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 경제 양극화, 민주주의 기능 이상 등으로 상대적 쇠퇴를 겪는 상황에서 국제 정세는 더욱 엄혹해지므로 기대 수준을 낮춘 새로운 대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선 적용 분야로 완전한 비핵화라는 절대 목표를 든다. 랜드연구소의 마이클 마자르는 비타협적인 완전한 비핵화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면서 군비 제한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대전략 차원의 논쟁이 미국의 실제 능력 범위 안에서 행동 가능한 분야에 초점을 맞추라는 주장으로 귀결되면서 북핵 논의에 적극적으로 도입되고 있다. 지난달 파이낸셜타임스는 ‘북한이 이겼다: 미국은 비핵화 소극(笑劇)을 포기하라’라는 도발적 제목하에 북한과 핵 군축 협상에 나서라는 미국 북핵 전문가의 주장을 실었다. 이미 올해 초 포린폴리시와 뉴욕타임스 등 미국 매체들은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사실상 실패 또는 실종됐다면서 정책 변화를 요구한 바 있다. 미국 내 대북 강경파 일부 인사도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목표는 견지해야 하지만 이는 지난한 작업이라며 북핵 동결을 제시한다.
이런 주장은 기본적으로 북한 핵 보유를 암묵적으로 인정한 상태에서 현상 관리에 치중하는 것이다. 북한이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 지역에 긴장을 조성하지 않도록 관리하는 동시에 미국 본토에 대한 직접적 위협이 되지 않도록 막는 것에 주안점을 둔다. 비핵화를 장기적 목표로 상정하고 미국의 이익을 증진할 수 있는 정책에 집중한다.
핵 군축에 대한 바이든 행정부의 속마음도 결국 노출됐다. 지난달 27일 보니 젠킨스 국무부 군비통제·국제안보차관이 “북한과의 군축은 선택지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발언은 전반적인 위협 감소 차원에서 군축을 이야기한 것이지만 핵 군축을 특별히 배제한 것도 아니므로 가능성을 열어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이후 네드 프라이스 국무부 대변인이 나서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진화했지만, 북한이 1년 반 전에 이미 거부한 ‘조건 없는 대화’만을 되뇜으로써 스스로 공신력을 낮추고 있다.
전술한 바와 같이 미 중간선거가 대북정책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을 것이므로 결국 워싱턴 주류의 의견이 정책 방향을 결정할 것이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추동하는 동력이 약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의 지난 한 달 반 공세는 한반도 현상 관리의 중요성을 더 높일 수 있다. 특히 북한이 지난 3일 대륙간탄도미사일까지 쏨으로써 미국은 본토 방어를 위한 북한 달래기에 나설 가능성이 더 커질 수 있다. 비상한 시국이다. 자국 방어의 무한한 책임을 상기해야 한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