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지옥철

입력 2022-11-05 04:11

‘초만원 운행으로 승객들의 질식·입원 사태가 발생했다. 지칠 대로 지친 승객들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전동차와 매표소의 유리창을 깨뜨렸다.’ 1989년 3월 한 신문에 실린 서울지하철 관련 기사다. 지옥철. 출퇴근 시간대 밀려드는 사람에 숨이 탁 막히는 지하철을 우리는 이렇게 부른다. 그때도 그랬다. 33년이 흐른 2022년, 서울지하철은 여전히 그 악명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서울지하철 중 가장 혼잡한 곳은 어디일까. SKT가 지난 8~10월 유동인구 데이터를 바탕으로 분석한 결과, 퇴근시간인 오후 6시40분 구로역에서 구일역 방면 열차가 가장 붐볐다. 서울지하철은 전동차 한 칸의 정원을 160명으로 보고 160명이 탔을 때의 혼잡도를 100%로 계산한다. 구로역 열차 혼잡도는 252%로 지하철 한 칸에 403명이 탄 상태다. 서울지하철 1량의 넓이는 약 60.84㎡로 이는 1㎡당 6.6명이 서 있는 상태에 해당한다. 이태원 참사 상황과 비슷한 밀집도다. 1㎡에 서 있는 사람이 5명을 넘어가면 좀처럼 발 디딜 틈이 없어 위험도가 증가한다. 퇴근시간대 4호선 동작역은 238%, 5호선 군자역도 228%였다. 수도권으로 범위를 넓히면 김포도시철도의 혼잡도가 285%로 가장 높다. 1인당 A4 용지 반쪽에 서서 출근하는 상황이다.

위험한 줄은 알면서도 지옥철에 몸을 욱여넣는 것이 우리나라 직장인의 일상이다. 숨쉬기조차 힘들지만 압사에 대한 인식이 없었다. 인파 관리나 군중 관리에 대한 경각심도, 국가 차원의 체계적인 연구도 없었다. 이태원 참사 이후 우리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이제 사람들은 더 이상 예전만큼 밀지 않고, 인파 속으로 몸을 던지지도 않는다. 한두 번 기다려서 탔던 지하철을 서너 번 기다려 탄다. 경각심이 생긴 건 다행이지만 이 또한 전 국민 이태원 트라우마의 하나인 것 같아서 슬프다. 정부는 부랴부랴 ‘만원 지하철’ 역사의 인파를 관리하겠다고 했다. 밀집 시간대 환승역이 위험하다. 부디 반짝 대책에 그치지 말고, 이번에야말로 지옥철의 악명이 사라지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한승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