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청장·서울청장, 언제 알았나’ 보고 과정 규명이 핵심

입력 2022-11-04 00:04
지난달 29일 밤 이태원 참사가 발생하기 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일대에 수많은 인파가 발 디딜 틈 없이 빽빽하게 몰려 있다. SNS 캡처

이태원 참사 당일 경찰 수뇌부를 비롯한 정부 조직의 ‘보고·지휘 체계 붕괴’ 상황을 규명하기 위해 보다 전방위적인 수사 전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참사 전후 대통령실과 행정안전부, 경찰의 보고체계가 뒤죽박죽으로 돌아간 정황을 밝히는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관계가 드러날 경우 형사처벌 대상이 대폭 확대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공안수사 경험이 많은 한 변호사는 3일 “경찰청장과 서울경찰청장이 실제로 대통령실보다 늦게 보고를 받은 것인지, 그렇다면 그 원인은 무엇인지 원점부터 살펴보는 수사가 불가피해 보인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선 현재 경찰청 특별수사본부가 진행 중인 참사 원인 및 책임 소재 규명 수사 범위가 대폭 확대돼야 한다는 시각이 많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검찰 등은 발생 시점 및 보고 시간이 조작됐다는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센터, 해경 등 관계기관과 관련자들의 컴퓨터 저장장치·휴대전화 등에 대한 광범위한 압수수색을 실시했었다. 검찰 간부 출신인 한 변호사는 “서울경찰청 112상황실과 CCTV 등 상황 파악 부서와 경비 업무 관련자, 최종 수뇌부까지 보고·지휘 라인을 총체적으로 따져보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경찰 지휘라인이 사고 가능성을 인지한 시점과 고의적 업무 해태 여부도 쟁점으로 거론된다. 특수본은 지난 2일 서울경찰청 등 8곳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에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시했다. 용산경찰서 등 관련 부서 및 관계자들이 사고를 의도적으로 방치했다기보다 업무를 태만히 했다는 정황에 무게를 둔 것이다. 경찰청은 이임재 전 용산서장에 이어 류미진 서울청 상황관리관에 대해서도 수사를 의뢰하며 “상황 관리·보고 의무를 게을리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수사 경과에 따라 책임 대상자와 적용 혐의가 넓어질 가능성도 열려 있다.

경찰 수뇌부까지 수사 선상에 오르면서 경찰의 ‘셀프 수사’ 우려도 이어지고 있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사고나 2009년 용산 참사 등의 경우 검찰이 사건 초기부터 경찰과 합동수사본부를 꾸려 참사 원인과 당국의 부실 대응 의혹을 들여다봤다. 하지만 지난 9월 ‘검수완박’ 법안 시행 후 검찰의 대형참사에 대한 수사개시권이 사라지면서 이런 방법은 사실상 어려워진 상태다. 경찰 책임 소재 규명으로만 제한된 수사는 효율적이지도, 현실적이지도 않다는 게 검찰 내부의 시각이기도 하다.

검찰은 관련 법리 검토를 하면서 특수본 수사 결과가 넘어오길 기다리는 상황이다. 이태원 참사 비상대책반을 꾸린 서울서부지검에선 경찰이 신청한 영장 검토 등 검찰 영역의 업무를 최대한 신속·정확히 처리하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정웅석 한국형사소송법학회장은 “이번 수사가 경찰 수뇌부까지 올라갈 수 있음에도 경찰 단독으로 진행되고 있다”며 “‘제 식구 수사’를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는 말이 나오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양민철 임주언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