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광역시 광산구 월곡동 흔히 ‘고려인 마을’이라 불리는 곳에 갓플리징교회(전득안 목사) 가 있다. 교회 1층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는데, 사무실 벽에 걸린 10대 아이들 얼굴이 담긴 100여장의 폴라로이드 사진이다.
이주민·다문화 가정의 사랑방
지난달 27일 교회에서 만난 전득안(52) 목사는 “교회의 ‘방과 후 공부방 수업’에 참여하는 아이들과 센터에 자주 오는 100여명의 고려인 아이들”이라고 소개했다.
각종 상비약이 비치된 커다란 수납장과 옷과 이불 등이 싸인 대형 비닐봉지 무더기도 눈에 들어왔다. 그제야 건물 입구에 붙어있던 ‘이주민종합지원센터’ ‘이주민무료진료소’ 간판이 이해가 갔다. 전 목사는 “2010년 교회를 세우고 베트남, 캄보디아, 몽골 등 이주 여성과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국어와 성경공부를 시작한 게 여기까지 왔다”며 웃었다.
그는 이곳에 교회와 함께 사단법인 세움과나눔을 설립해 ‘이주민종합지원센터’란 이름으로 지역 내 다문화 가정과 고려인 성도들을 섬기고 있다. 지하 1층부터 3층에 이르는 건물을 빌려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 아울러 한국어·영어 교실, 방과 후 공부방, 한국생활과 노무·법률 상담, 무료 의료 서비스 같은 실질적인 도움도 펼치고 있다.
인터뷰 도중 한 우즈베키스탄인 성도가 전 목사를 찾았다. 전기요금고지서를 들고 전기요금할인신청서 작성을 도와달라는 부탁에 전 목사는 꼼꼼히 살피며 서류 작성을 도왔다. 이후 서류를 복사해주며 혹시 모르니 갖고 있으란 조언도 건넸다.
교회 3층에서 공부하던 아이들은 틈틈이 전 목사 곁으로 내려와 그 옆에 놓인 사탕을 하나씩 집어갔다. 그럴 때마다 전 목사는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가며 “어제 축구는 재밌게 했느냐”며 묻기도 하고, ‘하이 파이브’도 했다. 전 목사는 “아이들 부모가 모두 일하느라 바쁘니 정이 ‘고픈 거’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우크라이나 피란민도 보듬어
최근에는 전쟁을 피해 우크라이나에서 한국으로 피란길에 오른 고려인들도 품고 있다. 지난 4월 한 달간 160여명 정도였던 이들 피란민 입국자 수가 현재는 500여명에 이른다. 전 목사는 지금도 광주뿐 아니라 전국 곳곳으로 유입되는 이들을 수도권, 충청권, 경상권 등에 퍼진 관련 사역 단체들과 연대해 돕고 있다.
3년 전부터는 아산사회복지재단의 지원을 받아 35명의 고려인 아이들을 위한 심리·정서 안정, 예체능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아울러 다문화 가정을 위한 자녀 및 부부관계 상담 등도 이어가고 있다. 내년에는 이들의 돌봄, 신앙, 교육을 지원하는 외국인학교 설립도 추진하려 한다.
전 목사가 이주민 사역에 본격 나서게 된 건 2010년 최용진 당시 갓플리징교회 목사를 한 신학 공부 모임에서 만나면서부터다. 당시 전 목사는 새벽이슬교회를 개척해 전남대에서 박사과정을 준비 중이었다. 탈북민과 이주민 사역에 집중하고 싶었던 두 목사는 서로 뜻이 맞았고 2018년 두 교회를 하나로 합쳤다. 최 목사가 3년 전 태국 선교사로 교회 파송을 받아 떠난 뒤 전 목사는 현재 시간제 전도사로 있는 우즈베키스탄 고려인 부부와 한국인 후배와 함께 사역을 잇고 있다.
이주민과 동역 ‘공존의 가치’ 실천
카자흐스탄 고려인으로 2017년 입국해 국내 신학대 진학을 준비 중인 이올레샤(32·여)씨도 예배 율동 인도와 청년 공동체 모임, 공부방 아이들 돌봄 등으로 전 목사 사역을 돕는다. 이씨는 “끊임없이 누군가를 돕는 전 목사님을 보며 성경을 공부하고 싶어져 신학대 진학을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올레샤의 말에서 전 목사의 사역 목적을 가늠해볼 수 있었다. 전 목사는 “성도들의 영적인 문제를 보듬으며 성경 말씀에 순종하고 실천하는 신앙을 갖게 해 좋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게끔 이끄는 사역을 하려 한다”고 말했다. 그는 “예수 십자가 복음으로 구원받은 우리가 하나님을 향한 감사를 바탕으로 이슬람 난민 같은 비신자들에게 배려와 긍휼을 흘려보내야 한다”며 “열린 마음으로 교회다움을 회복해나가야 한다”고 했다. 막연한 두려움과 편견에서 벗어나 소외된 이들을 품으며 공존의 가치를 모색해야 한다는 의미다.
“한국의 정으로 이방인 품었으면”
전 목사는 국내 노동 현장에서 이제는 없어선 안 될 존재이자, 세금도 내는 외국인 노동자 가정을 위한 국내 관련 정책과 지원 방안이 여전히 미흡하다며 안타까워했다.
전 목사는 “교회가 한국인의 것만은 아니지 않은가”라고 반문하며 “교회가 각자의 사역에만 치중하기보다는 ‘공존의 가치’에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한국의 김장 문화가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는데 우리네 고유의 김장 문화야말로 함께하고 나눠주는 문화가 아니냐”며 “ 한국 성도들이 하나님 말씀을 전 세계 모든 영혼에 주신 것이라 여기며 이방인을 향한 두려움과 편견을 내려놓고 우리 고유의 정서인 ‘정’ 문화를 바탕으로 이방인들을 품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광주=글·사진 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