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도 세타가야구에 있는 아동양육시설 도쿄이쿠세이엔(동경육성원) 본관 뒤편엔 여러 채의 독채 건물이 있다. 해당 독채 건물에선 소규모로 시설 아동들을 보호하고 있다. 4~6명 아동들은 생활을 지도하는 지원요원(케어워커) 4~5명과 함께 생활한다. 아동양육시설의 ‘소규모화’를 추진해온 일본 정부의 방침에 따른 것이다.
다카하시 나오유키(50) 도쿄이쿠세이엔 부원장은 지난달 19일 국민일보와 만나 “가능한 한 소규모의 그룹에서 아이들을 더 많은 직원이 돌볼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며 “이곳에서 규칙적이고 올바르게 생활하면 졸업하고 시설을 나간 후에도 그 생활을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도쿄이쿠세이엔은 126년 역사를 가진 기독교 기반 아동양육시설이다. 원가정에서 보호가 어려운 아이를 사회가 대신 품어주는 곳이다. 일본의 아동보호기관인 ‘아동보호소’를 통해 시설로 보내진 아동 54명이 생활한다. 이 곳은 일본에서도 시설 퇴소 후 자립을 지원하는 ‘애프터케어’ 등을 체계적으로 시행하는 시설 중 하나로 꼽힌다. 자체 장학금도 지원한다.
이곳은 아이들이 시설에 들어오면 나이와 상관없이 퇴소 후 계획을 세운다. 1년에 한 번씩 아동보호소와 회의를 진행한 후 자립지원계획서를 갱신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시설에서 돌볼지, 졸업 이후 가정으로 복귀시킬지 등의 큰 틀을 정한 다음 중·장기 계획을 세운다.
한국보다 많은 인력이 맞춤형으로 지원하지만, 모든 것을 대신하진 않는다. 아이들이 자립 방법을 스스로 깨우치도록 지도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곳에서 케어워커로 일하고 있는 한송이(42) 부홈장은 “단기 계획의 경우 이불 정리를 못 한다거나 양치 습관 등 정말 세세한 부분까지 확인해 ‘과제’로 정하고 개선 계획을 세우는 방식”이라며 “매년 자립지원코디네이터와 케어워커 등 모든 직원이 모여서 개선 여부를 점검하고 새로운 계획을 세우는 회의를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경제적 자립을 위해 금전 계획을 상세히 마련하는 것도 이곳 출신들이 이야기하는 시설의 강점이다. 자립지원 코디네이터가 퇴소 전 아이가 가진 돈과 정부·민간단체 등에서 받을 수 있는 금전적 지원을 더해 예산을 짠다. 이를 토대로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취업자는 만 20세까지 사용 계획을 아이와 함께 세운다. 매월 집세부터 학비, 식비, 의료비 등을 구체적으로 적고 부족한 금액을 어떻게 메울지도 고민한다.
한국과 일본 시설에서 모두 일한 한 부홈장은 두 나라의 가장 큰 차이로 일본의 ‘원가정 복귀 지원’을 꼽는다. 퇴소 후 가정복귀를 지원하는 ‘패밀리소셜워커(가정복귀요원)’ 직책이 별도로 있을 정도로 가정 복귀에 힘을 쏟는다. 한 부홈장은 “처음 일본에 왔을 땐 ‘학대 가정에서 온 아이를 다시 가정에 돌려보내도 되나’ 걱정이 됐다”면서도 “하지만 아이가 원한다면 아이를 지역사회의 자원과 연계해주고 머물 수 있는 가정의 환경을 갖춰 돌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것도 시설의 역할이라고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도쿄이쿠세이센이 바라는 아동의 자립은 ‘더불어 살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도움이 필요할 때 적절한 곳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 즉 ‘잘 의존하는 것’이 진정한 자립이라는 설명이다. 한 부홈장은 “시설 직원들 또한 아이가 의지하는 하나의 선택지가 될 수 있도록 자립 후에도 관계를 잘 유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쏟고 있다”고 말했다.
“자존감 확립해줘야 자립 후에도 잘 지내”
다카하시 동경육성원 부원장
“스스로 삶의 방향 정하는게 중요”
다카하시 동경육성원 부원장
“스스로 삶의 방향 정하는게 중요”
다카하시 나오유키(50) 도쿄이쿠세이엔 부원장은 1998년부터 24년 동안 이곳에서 일하며 실무 경험을 쌓은 전문가다. 생활을 지도하는 케어워커부터 가정 복귀를 지원하는 패밀리소셜워커까지 여러 직군에서 일하며 일본 자립지원의 변천사를 현장에서 지켜봐 왔다.
그는 "구체적인 기술을 익히도록 하는 지원은 다양해졌지만, 무엇보다 퇴소하기 전 아이들의 자존감을 확립해줘야 자립 후에도 잘 지낼 수 있다는 근본적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이고 왜 여기에 살고 있는지 아이가 제대로 받아들이고 삶의 방향을 정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카하시 부원장은 아동이 생각하는 자립과 시설이 바라는 자립이 달랐던 경험을 통해 자립지원의 의미를 설명했다. 그는 "진로를 잘 찾아 취업해서 시설에서는 성공적인 사례로 여겼던 아이가 있었는데, 퇴소할 때 '엄마가 나를 못 때리게 해 달라고 상담한 것뿐인데 이 나이까지 여기서 살게 될 줄은 몰랐다'고 말해 놀란 적이 있다"며 "정말 아이가 원하는 게 취업이나 진로를 위한 지원이었는지 돌아보고 아이들의 마음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자립준비청년을 뜻하는 '케어리버'(Care leaver)들의 주거나 빈곤 문제가 부상하면서 일본 당국은 2024년부터 시설 연령 제한을 완전히 폐지하기로 했다. 한국은 시설 연령 연장 방안이 논의되는 중이다. 그러나 다카하시 부원장은 퇴소 연령을 늦추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지적했다. 그는 "어른이 돼서도 시설에 있고 싶어 하는지 아이의 의지가 더 중요하다"며 "자립하지 않고 시설에 있고 싶어 한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텐데, 이를 해결해주고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퇴소한 아이들이 경제적 지원이나 심리·건강 관련 지원이 필요하다고 느끼고 실제로 관련 지원이 있다해도 창구를 몰라 도움을 청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시설이나 케어워커의 개별적 노력에 맡길 게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 사회적 자원들을 파악하고 필요한 아이들에게 연결해 주는 시스템을 곳곳에 갖춘다면 지원에서 소외되는 이들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도쿄=글·사진 양한주 기자 1wee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