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 이후 맞이한 월요일 출근길의 일이다. 아무것도 들을 수도, 읽을 수도 없어서 버스 맨 앞자리에 앉아 조용히 앞 유리 너머의 세상만 바라보고 있었다. 멀리 노란 유치원 버스가 길가에서 비상등을 켜고 아이들을 태우고 있었다. 아이들이 모두 탔다. 선팅이 되지 않은 버스 안쪽으로 아이들이 의자에 앉으러 가는 모습이 보였고, 인솔 교사는 침착하게 인도했다. 밖에서는 엄마들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내가 탄 시내버스는 그 뒤에 붙었다. 노란 버스가 꾸물거린다며 경적을 세차게 울렸다. 노란 버스는 서둘러 출발했다. 아직 앉지 못한 인솔 교사가 차 안에서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꽉 막힌 광화문에 다다르자 버스는 앞차들에 줄곧 경적을 울렸다. 그 장면은 마치 압사 직전의 광경 같았다. 응어리진 듯 가슴이 꽉 막혔지만, 겁쟁이인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무척 어렵지만, 말을 해야 한다. 일상 속에서 겪는 작고 소소한 문제라도 오지랖 넓게 굴어야 한다. 앞차의 아이들이 벨트를 다 맬 때까지 기다려줘야 한다고 한마디 해야 한다. 위로를 해야 한다. 동료들에게 힘들지는 않느냐고 묻고, 서로 다독여줘야 한다. 그러다 조금 울 수도 있지만 누가 더 강심장인지 굳이 대결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끼니를 챙겨줘야 한다. 입맛이 없어도 밥을 먹으라고 말하고, 그래도 안 먹겠다 하면 밥을 사줘야 한다. 그렇게 해도 세상은 쉽사리 변하지 않고, 나는 그저 참견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희망을 다루는 말하기는 더더욱 쉽지 않다. 참사 당일 낮에 지역의 아이들에게 ‘인공지능(AI)과 함께 살아가는 미래’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날 밤 참사가 벌어졌다. 우리 사회 그 어느 지표에서도 긍정적 시그널을 발견할 수 없는 요즈음, 어떤 희망을 품고 다음 세대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말을 한다는 것은 허무의 늪에서 빠져나와 최대한 용기를 내는 것이다. 그 말들의 묵직함이 서로에게 잘 전달됐으면 좋겠다.
유재연 옐로우독 AI펠로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