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한구석에 올라오는 불안한 느낌을 지울 수 없을 때가 종종 있다. 배를 타야 할 때 그렇다. ‘세월호’의 무게가 가슴 한편을 짓누른다. 운전하면서 한강 다리를 지날 때도 놀이기구인 바이킹을 탄 듯한 느낌을 받는다. 1994년 10월 21일 일어난 성수대교 붕괴사고 때문이라고 하면 과장이라 하겠지만 조마조마한 마음이 간혹 생긴다. 지하철은 어쩌다 탈 때면 머릿속에 2003년 2월 18일의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가 가끔 떠오른다. 여행지 숙소를 정할 때는 가건물에는 절대 가지 않는다. 방에 들어갈 때면 비상구는 어딘지 확인한다. 1999년 6월 30일 벌어진 경기도 화성 씨랜드 화재를 비롯한 여러 화재 사고의 여파다. 이제는 서울 이태원 해밀톤 호텔 근처를 가기 힘들게 될지 모르겠다. 소심하다거나 예민하다거나 기우라고 할 수 있다. 그래도 떠오르는 생각을 막을 방법이 없다.
큰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대통령들은 사과하며 재발 방지를 공언했다. 서해 훼리호 사고 이틀 뒤, 성수대교 붕괴 사고 이후 사흘 뒤, 씨랜드 화재 사고 다음 날,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사흘 뒤였다. 세월호 참사 때는 14일 만에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사과 발언을 했지만 제대로 된 사과가 아니라는 여론에 떠밀려 34일 만에 다시 사과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임기 내 계속된 사고에 골머리를 앓았던 듯싶다. 1995년 6월 29일 발생한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이후 “그동안 그토록 시설 안전 점검을 거듭 강조했음에도 다시 이런 대형 인명 사고가 일어난 데 대해 참으로 비통한 심정”이라고 토로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7년 12월 3일 인천 낚싯배 전복 사고와 관련해 다음 날 희생자들에게 조의를 표하고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이 같은 사고를 막지 못한 것과 또 구조하지 못한 것은 결국은 국가의 책임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관한 국가의 책임은 무한책임이라고 여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헌법 제7조1항). 30년 동안 선출직을 포함한 공무원들은 국민 안전을 위해 도대체 뭘 했는지 모르겠다.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조사관들은 ‘외면하고 회피했다-세월호 책임 주체들’(2017)에서 “관료들은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각종 운영 규칙을 지키는 것을 동아줄 삼아 결과적으로 책임을 회피할 수 있었다. 이는 세월호 참사 당시의 충격과 혼돈 속에서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라 일상의 관성처럼 그리고 수많은 대형 참사를 겪는 과정에서 줄곧 유지되어 온 방식이었다”고 지적했다.
이태원 참사 후 무한책임을 가진 행정부 수반을 비롯한 고위 공무원과 일부 정치인은 수습 우선, 주최 없는 현상, 유감 등을 먼저 말했다. 책임 소재를 가리겠다며 CCTV 녹화영상을 들여다보고 있다고도 했다. 누군가를 가해자로 만들어 책임을 피하려는 건가, 해당 자치단체와 경찰, 행정안전부를 먼저 조사해야 하지 않나 의문이 생겼다. 많은 참사의 규명 과정에서 봐 온 정부의 꼼수와 거짓에 따른 의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사흘 후 112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일부 ‘장’들이 갑자기 일제히 사과했다. 나흘 뒤 수사 당국이 용산구청 등 8곳을 압수수색했다. 여론 눈치 보면서 상황을 모면해보려는 대처로만 보인다. 대단한 걸 바라지 않는다. 책임지고, 다시 사과할 일 만들지 말고, 제발 우리를 지켜 달라.
첨언. 지도자, 책임자라는 사람들이 사과랍시고 유감이라고 하는데 유감은 사과의 뜻을 담고 있지 않다. 상대에게 서운하거나 불만이 있을 때 쓰는 말이다. 찝찝하다와 비슷하다. 사과 사죄 죄송 외에 다른 말은 없다. 그리고 사과는 서면으로 하는 게 아니다.
전재우 사회2부 선임기자 jwj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