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력원자력이 지난 9월 미국 원전업체 웨스팅하우스와 계약 절차 간소화 협정을 맺은 것으로 2일 확인됐다. 웨스팅하우스는 지난달 21일(현지시간) 한수원을 상대로 지적재산권 소송을 제기했는데, 소송 한달 전 양측이 원전 관련 기기를 빠르게 조달하기 위한 협약을 체결한 것이다.
한수원 측은 오는 7일 미국 웨스팅하우스 본사를 방문해 기기 조달 관련 후속 조치를 논의할 계획이다. 양측이 소송전에 돌입한 이후 공식 만남을 갖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민일보가 입수한 한수원 내부자료에 따르면, 한수원과 웨스팅하우스는 지난 9월 21일 ‘규격·가격협정(SPA)’을 체결했다. SPA는 국외 주요 공급사와 사전에 품목별 기술규격과 품질서류 제출 목록 등을 확정하고, 이후 절차를 간소화 해 신속하게 계약을 체결하는 제도다. SPA를 맺으면 조달일수를 약 100일 가량 감축할 수 있다. 양측이 소송전 직전까지도 협력 관계를 이어온 셈이다.
한수원은 향후 웨스팅하우스와 계속 접촉할 계획이다. 우선 한수원 조달전략팀 태스크포스(TF) 직원 3명은 오는 7일부터 10일까지 미국 피츠버그에 위치한 웨스팅하우스 본사를 찾는다. 웨스팅하우스 고위 관계자가 지난 9월 SPA 서명식 당시 한수원 측에 직접 방문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수원 직원들은 출장 기간 동안 웨스팅하우스 구매 엔지니어 등 10명의 실무자와 만나 SPA 품목 식별기준과 필수 기술규격 간소화 기준 등을 협의할 것으로 보인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한수원 직원이 미국 현지에 가서 구매한 물건 등을 직접 검수하는 차원일 것”이라고 말했다.
한수원은 아울러 웨스팅하우스의 단종품 관리 프로그램 등을 벤치마킹할 계획이다. 출장기간 동안 양측이 함께 참여하는 친목 행사와 투어 등도 계획돼 있다.
앞서 한수원과 웨스팅하우스는 폴란드 정부가 추진하는 ‘루비아토브-코팔리노 사업’ 수주권을 놓고 경쟁했고, 웨스팅하우스가 사업자로 최종 선정됐다. 양측 간 소송도 현재 진행형이다. 웨스팅하우스는 첫 한국형 원자로인 APR1400이 자사의 ‘시스템80’ 기술을 기반으로 개발됐기 때문에 자사의 동의 없이는 해외에 수출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만 한수원이 이번 출장을 통해 주요 협력 파트너인 웨스팅하우스와의 관계를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분석된다. 한수원은 앞으로도 웨스팅하우스와 정보 공유를 통해 현안 이슈 해결을 도모할 의지도 피력했다. 이에 따라 양측이 폴란드 정부·민간 주도 원전 사업에 대한 협력 방안을 검토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산업통상자원부도 한수원이 높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웨스팅하우스와 공조할 여지가 남아있다는 입장이다. 박일준 산업부 2차관은 지난달 31일 “원전을 지어본 경험과 비용 측면에 있어 한국 기업이 경쟁력이 있다”며 이런 관측에 힘을 실었다.
세종=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