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지휘부 책임, 어디까지 물을지가 쟁점”

입력 2022-11-03 04:06
2일 오후 서울 용산경찰서에서 압수수색을 마친 경찰 특별수사본부(특수본) 관계자가 청사에서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이태원 참사 당일 112신고 녹취록에서 드러난 경찰 부실 대응을 규명하는 수사·감찰이 시작된 가운데 법조계에선 업무상과실치사 등의 혐의 성립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참사 4시간 전부터 사고 우려 장소를 특정한 시민들의 신고가 11번이나 반복 접수됐다는 점에서 단순히 ‘주최자 없는 행사’로 치부될 영역을 넘어섰다는 것이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교수는 “당시 112 신고는 단순히 한두 번에 그친 것이 아니고 계속 반복됐다”며 “이는 신고 내용을 신뢰할 수 있고 사고 위험 역시 명백했다는 의미로, 경찰이 행정권을 발동해 시민 안전을 지킬 의무가 발생했다고 볼 수 있다”고 2일 말했다.

경찰관 직무집행법 제5조는 ‘위험 방지’를 위한 경찰 직무 범위를 구체적으로 규정한다. 이 조항은 ‘사람의 생명 또는 신체에 위해를 끼칠 우려 등이 있는 천재·사변이나 극도의 혼잡, 그 밖의 위험한 사태’가 있을 때 경찰이 위험 방지 조치를 취하도록 한다. 참사 이전 접수된 112 신고 내용은 당시 현장이 경찰의 재량 범위를 넘어 행정권 발동 대상으로 볼 수 있다는 얘기다.

한 교수는 “사고 위험을 경고하는 신고가 이어졌음에도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은 문자 그대로 직무유기”라고 말했다.

이태원 참사 원인 규명 수사는 경찰 지휘부의 책임을 어느 선까지 물을 수 있는지도 쟁점이 될 전망이다. 2015년 고(故) 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 당시 현장 지휘·감독을 소홀히 한 혐의(업무상과실치사)로 기소된 구은수 전 서울경찰청장은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지만, 2심에서 벌금 1000만원 유죄로 뒤집혔다. 2심 재판부는 “지휘권을 적절히 행사해 실태를 파악하고 필요한 조치를 해야 했다”고 지적했다. 당시 현장 지휘관과 살수차 조작 요원들에게도 각각 징역·벌금형이 선고됐다.

법무법인 이공 양홍석 변호사는 “이태원 참사 당시 현장 경찰관은 인력 부족으로 사고를 막지 못했을 측면이 크다”며 “용산서와 서울청 112종합상황실 등 경찰 조직 차원에서 어떤 대처를 했는지 규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용산구청과 서울시 등 지방자치단체도 사고 예방을 위해 적절한 조치를 취했는지 수사기관이 따져볼 것으로 전망된다.

신봉기 경북대 로스쿨 교수는 “경찰 조직을 넘어 용산구청과 서울시 등도 필요 조치를 하지 않았다면 법적 책임을 피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했다. 법무법인 찬종 이병철 변호사는 “서울시장과 용산구청장도 재난안전법에 따라 질서 유지를 위한 응급조치와 통행 제한 조치를 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고 말했다.

양민철 조민아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