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112 녹취록 파문… 행안장관 등 책임자 문책 서두르라

입력 2022-11-03 04:03
지난달 29일 서울 용산구에서 발생한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부상자가 병원으로 후송되고 있다. 당시 차량통제가 이뤄지지 않아 구급차가 사고 현장에 신속하게 진입하기 어려웠다는 지적이 나왔다. 최현규 기자

이태원 참사가 일어나기 전 시민들의 112 신고가 잇따랐음에도 경찰이 사실상 이를 묵살한 사실은 모두를 경악케 하고 있다. 경찰 녹취록에 따르면 사고 발생 전 총 11건의 신고가 들어왔는데 ‘압사’란 말이 언급된 신고가 6건이었다. 시민들은 “압사당할 것 같다” “대형사고가 날 것 같다”고 호소했으나 경찰이 출동한 것은 4차례에 그쳤고 그것도 ‘불편 신고’ 등으로 판단했다. 경찰의 황당한 상황 오판이었다.

당국은 그동안 “주최자 없는 행사여서 대처할 매뉴얼이 없었다”며 제도의 사각지대에서 벌어진 사고인 양 말했다. 하지만 녹취록은 경찰이 많은 이를 살릴 수 있었지만 임무를 다하지 않은, 국가 책임이 명백한 인재라는 점을 보여준다. 국민이 사고 4시간 전부터 살려달라고 애원했는데 경찰은 이를 외면한 채 대외적으로 ‘매뉴얼’ 탓을 한 것이다. 당국의 해명을 조금이라도 믿었던 사람들의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대통령실은 책임 추궁이 경찰 내부 감찰·수사 후 이뤄질 것이라 했지만 이미 드러난 사실만 봐도 윤곽은 확연해졌다. 경찰을 감독 관할하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책임이 가장 크다. 그는 “경찰을 배치함으로써 해결할 문제는 아니었다” “경찰 대응이 이태원 참사 원인은 아니다”라고 했다가 녹취록이 공개되자 뒤늦게 사과했다. 여론의 반발을 무릅쓰고 경찰국까지 신설하며 경찰 통제 권한을 강화한 마당에 이번 일에서 책임을 피할 순 없다. 윤희근 경찰청장 역시 마찬가지다. 신고 묵살뿐 아니라 일선에서 인력 증원 요청을 했음에도 윗선에서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증언들이 나온다. 서울경찰청장이 사고 1시간20분이나 지나 용산경찰서장으로부터 보고를 받았다는 보도도 나왔다. 경찰 지휘 계통이 무너져 내린 것이다. 기강 확립이 반드시 필요하다.

정부는 위기 속에서 능력이 판가름난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보여준 정부 모습은 기대 이하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외신 기자간담회에서 버젓이 농담을 하고 웃는 모습을 보여줬다. 위기의식이라곤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는다. 정부는 또 이태원 ‘희생자’를 ‘사망자’라고 표현하고, 조문 시 리본에 ‘근조’ 글자가 보이지 않도록 해 참사 의미를 축소한다는 비판을 자초했다. 정부가 문제를 수습하는 게 아니라 더 키우고 있다. 경제 위기, 안보 위기 해결에도 벅찬 상황이다. 이태원 참사가 사회통합을 저해하는 대형 위기로 번지기 전에 대통령 및 정부의 리더십과 결단력이 절실하다. 애도기간 직후에 인사 쇄신에 나서고 국가 시스템 개조 작업도 서둘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