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과 야당 그리고 보수와 진보의 해묵은 진영 싸움이 갈수록 격렬해진다. 진보 진영은 취임 6개월도 안 된 대통령을 탄핵하겠다고 매주 시위를 벌이고 있다. 검찰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향한 수사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나아가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과 관련해 지난 정부 국방부 장관과 해양경찰청장을 구속했다. 민주당이 윤석열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을 보이콧하면서 여야 대치는 정점에 이르렀다.
한국의 사회갈등 지표도 심각한 수준이다. 지난해 6월 발간된 영국의 킹스 컬리지 보고서에서 한국의 사회갈등 지수는 조사 대상 28개국 가운데 1위를 차지했다. 한국 사회의 이념 갈등이 크다고 응답한 비율은 87%였고, 정당 간 갈등은 그보다 더 높은 91%였다. 올 5월 말 한국리서치 조사에선 진보와 보수 갈등은 94%가, 여야 갈등은 95%가 심각하다고 응답했다. 한국 사회의 갈등은 해를 거듭할수록 더 심각해지고 있다. 한 언론사의 빅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올 1분기 종합갈등 지수가 178.4로 2018년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높아졌다.
문제는 우리 사회갈등을 누그러뜨릴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이 대표와 지난 정부에 대한 검찰 수사는 당분간 계속될 것이고, 민주당은 사생결단의 자세로 대응할 것이다. 팬덤 정치와 가짜 뉴스가 더해지면서 그야말로 이전투구 양상이 지속할 것이다.
정치권은 개헌을 통해 국민에게 희망과 비전을 주고자 한다. 김진표 국회의장은 5년 단임제인 대통령제를 4년 중임제로 바꾸고, 입법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헌을 추진하겠다고 한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도 개헌에 대해 긍정적인 의사를 밝혔다. 개헌을 통해 새롭게 도입하는 제도가 본래 취지대로 잘 작동할지 걱정이다. 지난 21대 총선에서 정치적 대표성과 비례성을 높이고자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했다. 그 결과는 완전한 실패였다. 거대 정당의 꼼수로 비례성은 더 나빠졌고 소수 정당의 의석은 더 줄었다. 결국 제도 도입의 결과는 제도의 내용이 아니라 제도를 운용하는 사람의 인식과 태도에 달려 있다.
한국 정치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온 나라가 진영 정치의 늪에 빠져 있다는 점이다. 정치인뿐 아니라 언론과 시민단체 그리고 시민들까지도 진영 싸움의 투사가 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적대 정치와 불신 문화가 우리 삶을 지배하고 있다. 한국행정연구원의 사회통합실태조사에서 대인 신뢰도, 즉 ‘일반적인 사람들에 대해 믿을 수 있다’라고 답한 응답이 2013년 72.2%에서 2020년에는 50.3%로 격감했다. 불신의 문화가 팽배한 상황에서는 어떤 제도도 본래 취지대로 작동하지 못한다.
궁극적인 답은 인식과 문화에 있다. 제도를 고민하기 전에 절제와 관용의 문화를 확산시킬 노력이 우선해야 한다. 정치인들은 주어진 권력을 최대한 절제하며 행사해야 한다. 국민은 나와 다름을 받아들이는 관용의 문화를 습득해야 한다. 정파 간 유불리가 직접적으로 연결된 개헌과 정치 관계법 개정이 사생결단의 싸움으로 번질 것이라는 점은 불 보듯 뻔하다. 각 정파는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법 개정을 하기 위해 온갖 권력을 동원할 것이다. 국민은 정파 싸움의 투사로 나설 것이며 상대 세력에 대한 관용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권력의 절제와 관용의 문화는 개헌과 같은 거대 정치가 아니라 ‘작은 것들의 정치’를 통해 조금씩 배울 수 있다. 거대 정치에서 나타나는 차이를 인정하기에는 우리 사회의 적대 정치가 너무 오랫동안 깊이 뿌리 내리고 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작고 사소한 갈등부터 하나씩 마주하면서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합의를 찾아가는 훈련을 해야 한다.
관(官)이 아니라 주민이 주도하는 실질적인 ‘주민자치’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동네 주민들이 한 달에 한 번씩 모여 주변의 문제들을 함께 의논했던 반상회가 절제와 관용의 문화를 체득하는 작은 것들의 정치 공간이 될 수 있다. 선거, 국회, 정당과 같은 거대 정치제도가 우리 사회갈등의 주범이었다면 동네 정치, 주민 정치가 사회통합의 길을 열어야 한다. 거대 정치에서의 권력은 폭주한다. 상대방을 죽이기 위해 온갖 수단을 다 쓴다. 그렇지만 동네 주민이 마주하는 작은 것들의 정치에서는 권력의 절제가 훨씬 수월할 것이다. 작은 것들의 정치가 오래 쌓일 때 비로소 거대 정치도 바꿀 수 있다.
윤성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