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직후 경찰 책임론이 불거졌을 당시 경찰은 사전에 위험을 예측할 수 없었다는 입장이었다. 안타까운 사고지만 대응에 문제 없었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사고 발생 전 압사를 우려하는 시민들의 112 신고가 11건 접수됐다는 사실을 1일에야 공개하고, 뒤늦은 사과를 하자 경찰이 책임 회피를 위해 신고 내용을 감추려 했던 것 아니냐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지난달 29일 이태원 참사 발생 후 가장 먼저 불거진 논란은 200명의 경찰 인력을 어디에 배치했는지였다. 그러자 경찰은 “투입 인원 ‘200명’은 금요일과 주말을 합친 3일 동안 연인원을 말하는 것”이라며 “실제 투입된 인원은 137명이었다”고 해명했다. 단 구체적인 배치 장소는 공개하지 않았다. 이 시기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경찰과 소방 인력배치 문제로 해결됐을 문제가 아니었다”며 경찰 책임을 덜어주는 듯한 발언을 했고, 논란이 일자 뒤늦게 사과했다.
사고 당시 이미 통행이 어려울 정도로 인파가 몰렸고, 경찰에 통제를 요청했다는 시민들의 증언이 다수 나왔음에도 녹취록 공개 전까지 경찰은 관련 사실을 부인했다. 이날 윤희근 경찰청장이 “참사 직전 112 신고가 다수 있었다”면서 현장 대응 미흡을 시인한 건 오전 11시30분이었다.
이는 30분 앞서 진행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에서 황창선 경찰청 치안상황관리관의 말을 뒤집은 것이다. 황 관리관은 “오후 6시 건(최초 신고)은 일반적으로 용인할 수 있는 불편신고 정도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오후에 공개된 녹취록의 최초 신고(오후 6시34분)에는 “압사당할 것 같아요”라는 내용이 담겼다. 이미 ‘압사’라는 신고 접수 내용이 있었는데도 ‘불편 신고’라고 해명한 것이다. 녹취록에 따르면 최초 신고 이후에도 10건의 유사 신고가 뒤이었다. 10시 11분까지 이어진 11건의 신고에서 ‘압사’는 신고자와 경찰이 모두 13번 언급했다. 그럼에도 경찰청 관계자는 “녹취록만 보고 말씀드리기엔 한계가 있다”고 했다.
녹취록 공개가 참사 사흘 뒤 이뤄진 것에 대해서도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이에 대해 경찰청 관계자는 “사고 다음 날부터 전체 112 신고 122건에 대해 한 건씩 일일이 내용을 확인했고 공개 전날 오후 11시30분쯤 결과물이 나왔다”고 해명했다. 녹취록 분석이 끝난 이후였지만, 이튿날 이뤄진 중대본 브리핑에서는 거짓 해명을 했거나, 사실 관계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셈이다. 공개된 신고 내역에는 현창 출동 이후 종결한 시각도 표시됐다. 하지만 종결 보고서 내용은 이날 함께 공개되지 않았다.
김판 기자 p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