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접수된 112 신고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경찰과 지방자치단체, 정부가 최소 3번의 사고 방지 기회를 놓쳤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핼러윈 인파로 인한 위험도를 제대로 평가하고 당일 위기 징후를 적극적으로 포착했다면 사고를 방지하거나 최소 피해를 줄일 수 있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1일 경찰청에 따르면 참사 당일인 지난 29일 오후 6시34분 112 신고를 시작으로 서울 용산구 이태원 일대에 인파로 인한 안전사고가 우려된다는 신고가 모두 11건 접수됐다. 서울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을 운영하는 서울교통공사도 참사 전인 오후 9시39분 “역사 내 승객이 포화돼 외부 출입구 유입 승객 진입을 통제해 달라”고 경찰에 요청한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경찰은 반복되는 위기 징후를 이를 읽어내지 못했다.
참사 당일 관계기관의 판단과 대응이 미숙했던 것은 사전 준비가 부실했던 것과 무관치 않다. 경찰과 용산구청, 상인회(이태원관광특구연합회), 이태원역장 등이 지난 26일 가진 간담회에서 ‘대규모 인파 밀집 예상’ ‘압사 사고 가능성’ 등이 일부 언급됐지만 구체적인 대책 마련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막대한 인파로 인한 위험성을 크게 인지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 3년 만에 맞는 ‘노마스크 핼러윈’에 10만명의 인파를 예상하고도 기존 수준의 대책을 재탕했다. 구청도 지난 27일 자체 대책 회의를 열었지만 별도의 안전 대책은 없었다. 참사 당일 현장에 배치된 인력은 경찰 137명, 구청 30여명 등 200명에도 미치지 못했다. 더욱이 경찰 인력 상당수는 질서 유지보다 마약 등 범죄 단속을 위해 배치됐다. 10만 인파를 통제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상급 기관들의 무사안일까지 겹쳤다. 서울경찰청은 용산경찰서에 경비 인력을 추가로 투입하지 않고 형사 등 수사경찰과 관광경찰을 일부 파견하는 데 그쳤다. 서울경찰청은 “일반적으로 예상되는 규모와 문제의 수준으로 이미 ‘용산서 종합치안대책’에 반영되어 있어 추가적인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서울시도 구청 차원의 대응에 맡겼다. 재난안전법에 따라 재난 문자를 보내야 하는 서울시는 참사가 벌어지고 1시간40분이 지난 오후 11시56분쯤에서야 재난 문자를 발송했다.
시민 안전을 책임지는 이들 기관은 참사 이후에도 책임 회피에 급급했다. 경찰은 “관련 매뉴얼이 없었다”고 강조했다.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구청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은 다 했다”고 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경찰과 소방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고 말해 논란을 자초했다. 경찰, 구청·시청, 행안부 수장은 여론의 비판이 계속되자 참사 사흘 뒤인 1일에야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특히 경찰청은 참사 직후 “‘세월호 이후 최대 참사’로 정부 책임론이 확대될 경우 정권 퇴진운동으로까지 끌고갈 대형 이슈”라며 진보 단체 동향 등을 수집해 정부에 보고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청은 “적법한 범위의 정책 정보”라고 해명했다.
김판 김이현 기자 p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