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적자 장기화 조짐에… 커지는 경기 침체 경고음

입력 2022-11-02 04:05

한국 경제의 ‘최후 버팀목’이던 수출마저 꺾이면서 경기 침체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정부는 반도체 산업에 1조원의 재정을 투입하는 등 수출 대책을 내놨지만 당장 성과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수출 역성장은 세계 경기 침체 흐름과 맞물려 어느 정도 예상됐다. 1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수출 증가율은 지난 6월 5.4%로 16개월 만에 한 자릿수로 떨어진 뒤 9월(2.8%)까지 부진한 흐름이 이어져왔다. 정부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주요국 통화 긴축 등 글로벌 경기 둔화 영향으로 각국의 수입 수요가 주춤한 상황이 주요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역대 최고 실적(24.2%)을 나타낸 지난해 10월 수출의 기저효과도 영향을 미쳤다.

향후 수출 부진은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짚은 원인들은 단기간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비상경제장관회의를 열고 “반도체 단가 하락 등 글로벌 정보기술(IT) 경기 위축이 IT 비중이 높은 우리 수출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면서 “당분간 증가세 반전이 쉽지 않을 전망”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19개월 연속(2015년 1월~2016년 7월) 수출이 감소한 악몽이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당시에는 전 세계적으로 보호무역주의 기류가 강해지며 세계 무역이 위축된 영향이 크게 작용했다.

7개월째 계속되고 있는 무역적자도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다. 무역적자의 가장 큰 원인은 에너지 수입액 급증인데, 이 역시 좀처럼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국제유가는 최근 90달러 안팎을 횡보하고 있으며 액화천연가스(LNG) 가격은 오름세를 지속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수출이 꺾일 때마다 경제 위기가 찾아왔다는 점에 주목한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내년도 세계 경기 침체 흐름이 심화할수록 수출 부진 경향도 가속화할 것”이라며 “경상수지 적자가 되면 대외신인도가 떨어지면서 외환위기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도 커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수출 부진이 장기화하면 달러화를 중심으로 한 국내 자금 경색이 더 심해질 수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우리 통화가치가 상대적으로 약세인 상황에서 수출 부진이 장기화하면, 외환을 확보하기 어려워져 금융과 외환시장 불안으로 확대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날 수출 경쟁력 강화를 위해 반도체 등 주력 산업과 해외건설, 중소·벤처, 관광·콘텐츠, 디지털·바이오·우주 등 ‘5대 분야 신성장 수출동력 확보 실행계획’을 내놨다. 반도체에 1조원의 재정을 투입하고 차세대 반도체 등 관련 유망기술 연구·개발(R&D) 지원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또 대기업 국가전략기술 시설 투자 세액 공제율을 중견기업 수준으로 상향하는 등 세제 지원도 확대키로 했다. 김 교수는 “수출 개선을 위해서는 수출선 다변화와 수출기업 독려에 나서는 한편, 환율 안정에 신경써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신재희 기자 j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