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심방, 소통과 공감으로 마음의 문을 열다

입력 2022-11-05 03:00
‘심방’. 찾을 심(尋)과 찾을 방(訪)이 짝을 이룬 이 단어는 ‘성도를 방문하여 찾아봄’이란 뜻으로 통한다. 전통적 방식의 심방이 목회자가 성도의 가정을 방문해 신앙적 상담을 나누고 위로하는 것이었다면, 지금은 공간과 시간, 심방 참여자와 준비과정 등이 시대적 변화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난다. 핵심은 소통과 공감에 있다. 심방이 진솔한 소통을 위해 성도의 ‘마음 문’을 열게 하는 첫 단추라는 점에서 사역자들에게 ‘마음을 찾아가는 심방(心訪)’으로 불리는 이유다.

지난 9월 발표된 ‘한국교회 성도들의 인식 조사’에서 ‘청년층 활성화를 위해 필요한 것’을 묻는 질문에 청년(19∼34세) 응답자들은 압도적 1위로 ‘소통의 장 마련’(23%)을 꼽았다. ‘늘어나는 청년 가나안 성도’ ‘공감 없이 심리적 박탈에 내몰리는 N포세대’를 바라보는 청년 사역자들은 어떻게 성도들의 마음을 찾아가고 있을까. 그 현장을 따라가 목소리를 들어 봤다.

그래픽=신민식

의미 있는 일상의 순간을 동행하다

담임 목사와의 점심 심방을 위해 서울 마포구의 한 식당으로 향하는 예원(23)씨의 마음은 평소의 만남과 조금 달랐다. 오늘은 둘이 아닌 세 사람의 만남이기도 했고, 심방에 추가된 1인이 특별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바로 자신을 만나러 오랜만에 뉴질랜드에서 입국한 남자친구 우석(26)씨다.

세 사람은 MZ세대 ‘핫 플레이스’로 꼽히는 망원동 맛집에서 ‘첫 만남’ ‘신앙과 공동체’ ‘직업과 비전’ 등 쉼 없이 주제를 바꿔가며 대화를 나눴다. 예쁘게 그릇에 담긴 음식을 사진으로 남기기도 하고 서로의 이야기에 격하게 공감하며 박장대소하는 모습은 오랜만에 만난 동창들과의 수다를 연상케 했다.

우석씨는 “장거리 연애를 하면서 여자 친구에게 정서적으로 힘이 돼주는 공동체에 대한 얘길 들을 때마다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면서 “실제로 목사님을 만나보니 삶과 신앙의 든든한 버팀목 같은 분이어서 반가웠다”고 전했다.

임형규 라이트하우스서울숲 목사는 “두 사람이 오랜만에 만나 가고 싶은 곳, 하고 싶은 일들도 많았을 텐데 시간을 내준 게 오히려 고맙다”면서 “성도의 일상에 의미 있는 순간을 함께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하다”며 웃었다.

심방의 첫 단추=‘자만추’

임 목사의 일상은 설교 준비나 교역자 회의를 제외한 대부분 시간이 심방으로 채워진다. 그는 “하루 중 점심 식사, 오후 티타임, 저녁 식사 시간엔 성도들이 다니는 대학 캠퍼스, 회사 구내식당, 회사 근처 카페 중 한 곳에 있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핵심은 ‘자연스러운 만남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관리와 관계는 ‘한끗 차이’입니다. 누군가를 의무적, 피상적으로 대한다는 건 청년들에게 기피 대상으로 여겨지는 지름길이죠. 예수님이 말씀을 전하실 때는 진리를 날카롭게 전했겠지만 함께 있는 것 자체가 불편했다면 제자들이 24시간 붙어 있었을까요. 같이 밥 먹다가 체했을 겁니다(웃음).”

민희진 서울 서부성결교회(임채영 목사) 청년부 담당 목사에겐 매일 아들의 유치원 등·하원 길을 오갈 때마다 자신만의 루틴이 있다. 성도들의 인스타그램과 카카오스토리 등을 살피며 ‘좋아요’ ‘힘내요’를 눌러 공감을 표하거나 댓글로 안부를 전하는 일이다. 재잘재잘 수다 떨 듯 카카오톡 문자를 주고받는 건 일상이다. 카톡으로 나눈 이야기들은 주일 예배 후 인사 나누는 순간에 친밀도를 높이는 재료가 된다. 어느 정도 친밀도가 높아진 성도들과 비로소 평일 만남을 추진한다. 온라인심방-주일심방-평일심방으로 이어지는 민 목사의 심방 매커니즘이다.

그는 “목회자가 만남을 제안했을 때 성도에게 ‘왜? 갑자기?’란 생각이 들지 않게 하는 게 중요하다”며 “사전 대화가 충분히 이뤄질수록 심방의 대화 주제가 잘 추려지고 자연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만날 수 있다”고 말했다.

심방은 ‘타이밍’이 생명

게티이미지

교회 내 대학·청년부를 맡고 있는 박효범(40·서울 성일교회) 심영보(39·성남 금광교회), 최민준(가명·40·A교회) 목사는 다음세대와 청년부 사역에 몸담은 지 평균 13년을 훌쩍 넘는 베테랑들이다. 평소 단체 채팅방에서 사역 관련 고민과 비전을 나누고 종종 오프라인 모임을 갖는다는 세 사람은 “심방은 ‘타이밍’이 생명”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러면서 “타이밍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세심한 관찰력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청년들이 ‘목사님이 나에게 관심이 있구나’를 느끼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반응 속도예요. 평소보다 힘들어하는 모습이 보일 때 바로 연락해 안부부터 묻는 게 중요하죠. 심방 중에 다른 성도의 이름이 언급될 때가 있어요. 간접적인 SOS 신호죠. 잊어버리지 않도록 그 성도에게 안부 문자라도 먼저 보내둡니다. 최근 이태원 참사를 접하면서 큰 충격을 받기도 했지만 동시에 청년들이 얼마나 일상에서 해방구를 찾기 어려웠을지를 깨닫는 계기가 되기도 했어요. 이럴 때일수록 평상시에 어떤 고민이 얼마나 쌓였는지 더 들여다 봐야죠.”(박 목사)

심 목사는 “지속적인 심방을 통해 목회자와 공감을 나눈 성도들은 딱 봐도 티가 난다”고 했다. 그는 “마음이 열린 친구들은 ‘설교 집중도’가 확 올라간다”며 “결국 관계의 정립이 ‘복음의 전달’이란 목표에 도달하게 하는 힘”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설교가 받아들여지기 시작하면 교회 내 소그룹 활동, 다른 성도와의 활발한 교제로 자연스레 이어진다”고 덧붙였다.

장기적 관점의 목회 마인드가 필요해

한국교회 내 청년부 사역은 ‘단기 사역’ ‘거쳐 가는 부서 사역’으로 여기는 정서가 여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청년 사역에 소명을 가진 부교역자가 부서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담임 목회자의 시선은 어떨까.

“청년 성도들도 압니다. 자기의 신앙적 지도자가 비전을 품고 준비된 사람인지, 교구 사역이나 담임 목회 이전에 그냥 거쳐 가는 사람인지요. 교회의 사역 방향에 대한 신뢰가 거기서 판가름 나죠. 대개 3년 주기로 부서를 이동하는 유·초등부, 중·고등부와 달리 대학·청년부는 짧게는 4~5년, 길게는 10~15년도 갑니다. 성도들 입장에서 사역자가 자주 바뀌는 상황이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죠. 장기적 관점의 목회 마인드가 필요한 겁니다.”(김영삼 성남 금광교회 목사)

심방 주의보! 이러면 마음 문 닫혀요

마음 문을 열겠다고 준비한 심방이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목회자들은 저마다의 심방 주의 사항을 들려줬다.

“심방에서만큼은 ‘교회가 나를 위해서 관심을 갖고 이렇게까지 하는구나’ 하는 느낌을 주는 게 중요해요. 약속 장소에 먼저 도착하는 것부터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최 목사)

“심방은 가르치는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믿을 만한 사람으로 만남의 자리에 나가야 하는 자리예요. 목사는 성도에게 부모도, 친구도 아니지만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제3지대’가 돼줘야죠.”(민 목사)

“성도가 겪는 어려움을 알고 만났어도 직접 언급하는 건 지양합니다. 스스로 꺼내 놓을 수 있도록 기다리며 듣고, 말씀 안에서 조언하며 함께 이겨가도록 도와가는 게 중요해요.”(심 목사)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