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쇄성폭행범 ‘수원 발바리’ 박병화(39)의 출소가 다가올 무렵 법무부에는 국회의원들, 지방자치단체장의 방문 행렬이 이어졌다. 이재준 수원시장과 지역 의원들이 지난 28일 박병화 거주반대 건의문을 전달했다. 박씨 행선지가 드러난 31일에는 정명근 화성시장 등이 법무부를 항의 방문했다. 박씨가 자신들의 지역에 들어와 살 수 없도록 끝까지 싸우겠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이 지자체마다 이어졌다.
법조계 인사들은 “지역의 불안감은 이해하지만, 법무부에 뭘 요구할 문제는 아니지 않으냐”는 반응을 보였다. 출소한 성범죄 전과자의 주거를 제한할 법적 근거는 현재 한국에 없다. 신상과 주소지를 공개하고 성충동조절 치료와 외출시간 제한 등으로 관리감독하는 것이 허용된 조치다. 이러한 보안처분마저도 형벌불소급원칙(범죄는 행위 시의 법률에 의해서만 처벌받는다)에 어긋나는 실질적 형벌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다만 헌법재판소가 이를 받아들이진 않았다.
악명 높은 성범죄 전과자의 복귀 때마다 되풀이되는 지역의 한숨과 반발 풍경에는 헌법적 문제가 깃들어 있다. 한 전직 헌법재판관은 “개인의 자유권과 국가의 국민에 대한 보호 의무가 충돌하는 장면”이라고 풀이했다. 중범죄를 저지른 이에게도 법이 명한 대로의 형기를 마쳤다면 주거지를 선택하고 행동할 기본권은 있다. 하지만 국가 역시 그의 주변에 있는 국민을 보호할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법 이념으로만 보면 전과자의 인권이 존중받아야 할 것이지만, 이웃들이 재범 불안을 호소하며 강제퇴거를 부르짖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난제를 풀 방안 중 하나로 꼽히는 것은 성범죄 전과자의 기본권을 명분을 얻으면서 침해하는 입법이다. 국회에서 관련 법안이 발의된 적이 없진 않지만 최종 문턱을 넘진 못했다. 강훈식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은 조두순의 출소를 앞둔 2020년 9월 출소자가 피해자 주거지와 같은 시 군 구에 주거하지 못하게 하는 내용의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당시 여성가족소위에선 “주거 이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한다는 의견이 있을 수 있다”는 전문위원 지적이 뒤따랐고 법안은 계류됐다.
전문가들은 주거 제한 자체가 상당한 기본권 침해인 만큼 보다 세밀한 입법 설계가 필요하다고 했다. 또 다른 한 전직 재판관은 “주거까지 제한하는 입법례는 다른 나라에서도 드물다”며 “만일 입법이 된다면 헌재에서 따져질 것인데, 피해자와 일정 거리를 두게 하는 입법은 가능해 보인다”고 말했다. 사회적 우려가 큰 성범죄자 출소 때에는 법무부가 위원회를 소집해 심사를 거쳐 그의 주거·방문 제한지역을 결정할 수 있게끔 하는 입법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법조계 관계자는 “입법과 함께 양형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 전체가 머리를 맞댈 문제”라고 말했다. 법무부는 최근 아동 연쇄성범죄자 김근식의 만기 출소 논란을 계기로 고위험 성범죄자 재범 방지 대책을 발표하며 “미국 등에서와 같이 아동 성범죄자에 대해 사실상 종신형에 가까운 중형이 선고되는 경우가 거의 드물다”고 했다. 반면 미국에선 여성 체조선수 다수에 대해 성폭력을 저질렀던 국가대표 체조팀 주치의에게 징역 360년형이 선고됐다. 법무부는 지난달 20일 고위험 성범죄자 재범 방지를 위한 연구용역을 발주했다. 연구용역 내용에는 미국 ‘제시카법’처럼 아동 성범죄자 거주를 일부 제한하는 제도 도입이 가능한지 여부도 포함됐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