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이 머물다간 그 자리… 눈물바다 된 이태원역 1번출구

입력 2022-11-01 04:03
세월호 유가족들이 31일 서울 용산구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인근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추모공간 앞에서 두 손을 모아 묵념하면서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최현규 기자

‘이태원 참사’ 피해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31일 마련된 이태원 추모공간과 서울광장·녹사평역 광장 합동분향소에는 하루 종일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이태원에 자주 방문해서’ ‘피해자들이 자녀와 비슷한 나이여서’ 등 이유는 다양했지만 이들은 모두 “비극이 남 일 같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사고 현장 바로 옆인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 자리 잡은 추모공간에는 시민들이 놓고 간 하얀 국화가 눈처럼 소복이 쌓였다. 한 송이씩 꽃을 두고 가는 시민들도, 뒤에 서서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채 이를 가만히 지켜보는 시민들도 있었다. 한 남성은 국화를 향해 절을 한 후 엎드린 채 통곡하기도 했다.

국화 틈엔 포커카드, 초콜릿과 맥주, 소주, 위스키 등도 섞여 있었다. 오전 11시40분쯤 국화를 한 송이 놓고 떠나던 서모(43)씨는 뒤돌아와 담배 세 개비에 불을 붙여 종이컵 위에 조심스레 올렸다. 그는 “담배 피우던 아이들도 있을지 모르는데 하늘나라 가서도 담배 생각나지 않겠냐”며 눈물을 보였다. 참사 당일 밤 이태원에서 있었다는 서씨는 “피해자들이 가깝게 느껴져 마음이 안 좋다”고 했다.

피해자를 추모하는 마음을 담은 편지도 끼어 있었다. 편지지엔 “고통 없이 평안하길 바랍니다” “부디 편히 잠드소서”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대학생 김보금(19)씨는 그 옆에 노란색 편지지 한 장을 더 놓았다. 그는 “살면서 한 번쯤은 마주쳤을 제 친구, 언니, 오빠라고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하고 온몸의 힘이 풀렸습니다”라고 썼다. 이어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저와 제 친구들이 지켜보겠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서울 중구 서울광장 앞에 마련된 분향소에도 대기 줄이 이어질 정도로 조문객들이 줄지어 분향소를 찾았다. 박경희씨(62)는 “20대 희생자가 많다고 하는데, 또래 자녀가 있는 부모로서 사고 소식을 듣고 마음이 아파 오게 됐다”고 말했다. 오후 12시가 넘자 점심시간에 시간을 내서 추모하려는 직장인들의 모습이 많이 눈에 띄었다. 직장인들이 현장을 찾으면서 10m가량 줄이 이어질 정도로 조문 인파가 몰렸다.

같은 시각 서울지하철 6호선 녹사평역 광장의 합동분향소는 조용한 분위기 속에 헌화가 이뤄졌다. 성남에서 근무하는 권모(52)씨는 퇴근 후 직장 동료들과 함께 1시간여 지하철을 타고 분향소를 찾았다. 권씨는 “사고 다음 날 소식을 듣고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고 말했다. 녹사평역 광장 합동분향소는 11월 5일까지 24시간 운영된다.

한덕수 국무총리와 오세훈 서울시장,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윤희근 경찰청장, 김광호 서울경찰청장 등은 이날 서울광장 합동분향소를 찾아 조문했다. 한 총리는 조문록에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유족들께서 느끼실 헤아릴 수 없는 참담함에 깊은 위로를 드립니다’라고 적었다. 오 시장은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적고는 발언 없이 분향소를 떠났다.

다른 시내 자치구도 합동분향소를 속속 설치했다. 서울을 제외한 16개 시·도도 일제히 청사와 광장 등에 합동분향소를 설치했다. 경기도는 도청과 북부청사 등 2곳에서 합동분향소를 설치·운영하고 있다. 인천시가 시청 대회의실에 마련한 합동분향소에도 조문객들이 줄을 이었다.

구정하 신지호 김이현 기자 g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