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당할 수 있던 참사” 사회 집단적 트라우마 위험

입력 2022-11-01 00:03 수정 2022-11-01 00:12
한 시민(오른쪽)이 31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 설치된 ‘이태원 사고 심리지원 현장 상담소’에서 상담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이태원 참사가 유발한 트라우마가 전 사회에 드리우는 양상이다. 비극의 현장에 있지 않았음에도 사고 발생 초기부터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퍼진 현장 영상을 접한 후 심리적 고통을 호소하는 시민이 늘고 있다. 특히 젊은 층에 익숙한 장소에서 대형 참사가 발생한 데다 희생자 대부분이 20대여서 비슷한 연령대에 가해진 충격은 컸다. 31일까지 확인된 이태원 참사 사망자 155명 중 20대는 103명으로 가장 많았다.

전문가들은 이번 참사가 집단적 트라우마가 될 수 있는 만큼 20대 전후 연령대를 중심으로 정신적 상처를 관리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20대 대학생 A씨는 지난 29일 밤부터 이태원 압사 소식을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로 접한 뒤로 어지럼증과 메스꺼움을 느끼고 있다고 호소했다. 이런 증세는 SNS에 퍼진 사고 당시 희생자들의 절규하는 모습과 구급요원이 집단으로 거리에서 심폐소생술(CPR)을 하는 장면, 푸른색 모포에 덮인 채 거리에 누워 있는 사망자들의 사진들을 본 뒤 본격적으로 나타났다.

사고가 발생한 해밀톤호텔 옆 골목을 종종 방문했었다는 그는 “나도 당할 수 있었다는 생각을 하면 결코 남 일 같지 않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A씨는 사고 영상 장면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 공부에 집중할 수 없는 상태라고 했다. 그는 “‘내가 너무 예민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 친구들의 반응을 물어보기도 했다”고 전했다.

차민우(30)씨 역시 참사 이후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있다. 차씨는 “사람들이 계속 울부짖고 CPR을 하는 모습이 잔상으로 남아서 일할 때 집중하기도 너무 힘들다”며 “현장에서 ‘친구를 살려 달라’ ‘왜 숨을 못 쉬냐’고 울부짖던 소리가 계속 귓가를 맴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현장에서 참사를 직접 목격하지 않았더라도 참사 영상이나 사진 등을 본 누구나 트라우마에 시달릴 수 있다고 진단했다.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장을 맡고 있는 백종우 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비슷한 연령대 학생들 중에서 중간고사를 마치고 ‘축제를 즐길까’ 하는 비슷한 기분에 있었던 학생들이 많았을 것”이라며 “사고 소식을 보며 ‘남 일 같지 않다’는 마음으로 불면증, 죄책감이 드는 것은 ‘간접외상’으로 매우 자연스러운 반응”이라고 분석했다. 또 “인터넷 속 고통스러운 사진과 영상을 반복해서 보는 것을 멈추고, ‘슬픔을 느끼지 말라’고 얘기하기보다 가족이나 믿을 수 있는 사람한테 슬픔의 감정을 말할 수 있게 주변에서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많은 희생자들이 20대였고, 사고 현장이 20대들에게 익숙했던 공간이었던 만큼 심리적 불안과 우울, 트라우마가 이들에게 잘 오게 되는 건 전형적인 재외상화 현상”이라며 “정부가 정한 전 국민 애도기간 동안 젊은 세대의 트라우마를 관리해 상처가 남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 특히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참사 관련 조기 심리상담을 제공하고 있는 국가트라우마센터 관계자는 “모든 재난에는 낙인, 비난에 따른 죄책감이 따르는데, ‘이런 상황이 진짜가 아니었으면’ 하면서 현실을 받아들이는 자체를 힘들어하는 모습도 보인다”며 “2018년 센터 창립 이후 강원도 산불, 헝가리 유람선 참사 등 사건이 있었지만 이번 참사 정도의 규모는 없었다”고 말했다.

신지호 조효석 기자 p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