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기증도 못할 만큼…” 딸 앞세운 엄마는 또 무너졌다

입력 2022-11-01 04:06
외국인들이 31일 서울 용산구 서울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1번 출구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 공간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만난 이태원 참사 유족 임모씨는 딸의 사고 소식에 망연자실한 상황에서도 생전 딸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올해 전남 목포에 있는 간호대에 입학해 간호사를 꿈꿨던 딸 박모(27)씨는 가족들에게 장기기증 의사를 내비친 적이 있었다. 딸의 비보에 식사도 못하고 눈물만 쏟던 임씨는 딸의 의사를 존중해 어렵게 장기기증을 결정했다. 하지만 병원으로부터 ‘불가’ 판정을 받았다.

박씨는 지난 29일 밤 이태원 사고 현장에서 구조돼 심폐소생술(CPR)을 받으며 서울대병원 응급실로 옮겨졌다. 그날 박씨는 대학 친구와 함께 이태원을 찾았다 사고를 당했다. 임씨는 이튿날 새벽 3시 경찰로부터 사고 소식을 전해 듣고 허둥지둥 서울로 올라왔다. 다행히 살아있다는 소식에 잠시 희망을 품었지만 산소호흡기를 단 채 의식이 없는 딸의 모습을 본 어머니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사고가 난 해밀톤호텔 옆 골목에서도 아래쪽에 있었던 박씨는 몸 전체가 강한 압력 아래 놓여 있었다.

슬픔을 가누기 힘든 상황에서도 어렵사리 장기기증 뜻을 밝혔지만 이미 박씨는 기증이 어려울 정도로 장기 손상이 심한 상태였다. 임씨와 가족들은 “장기기증이 어렵다”는 병원 측 말에 참사 당시 길바닥에서 딸이 겪었을 극심한 고통이 다시 한 번 고스란히 전해졌다고 한다. 장기기증 불가 판정을 받은 30일 오후 5시30분 박씨는 결국 숨을 거뒀다.

임씨를 위로한 건 박씨보다 다섯 살 어린 둘째 딸이었다. 동생은 “언니는 착하니까 좋은 곳에 가서 엄마와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도와줄 거야. 우리가 언니 몫까지 열심히 살아야 해”라며 엄마를 안았다고 한다. 박씨의 이모는 “조카는 대학에 들어간 뒤 ‘평생 일한 엄마, 이제 호강시켜줄 일만 남았다’고 말했던 착한 딸이었다”고 전했다. 유족들은 광주에 빈소를 차리기 위해 딸을 데리고 내려갔다.

서울의 한 장례식장에는 어머니와 딸의 영정이 나란히 놓여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이번 참사의 최연소 사망자인 중학생 A양(15)은 어머니, 이모, 이종사촌과 함께 축제에 갔다가 사고를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모도 이번 참사로 숨져 다른 병원에 안치됐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A양 빈소 앞에서 눈물을 훔쳤다. 서로 어깨를 감싸며 다독이거나, 고개를 숙인 채 슬픔을 삼키는 학생도 있었다.

조희연 교육감도 이날 두 모녀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조 교육감은 “아들딸 잃은 슬픔이라는게 위로할 수 없는 슬픔인 것 같다”며 “특히 아이와 엄마, 이모가 핼러윈까지 같이 갈 정도면 얼마나 단란했겠나. 단란함이 비극의 원인이 된, 이런 일도 다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외국인 아이들이 서울 중구 서울광장 이태원 참사 합동분향소에서 국화를 들고 조문하는 모습. 연합뉴스

타지에서 허망하게 목숨을 잃은 외국인 피해자의 가족들도 속속 한국을 찾았다. 오스트리아·한국 이중국적인 김모(24)씨 부모는 황망한 사망 소식을 듣고 31일 오후 경기도 고양 동국대일산병원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지난 9월 한국에 입국한 김씨는 2개월짜리 국내 대학 외국인어학당에 다니고 있었다. 오는 7일 공부를 마치고 오스트리아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김씨 사촌형은 “어린 시절부터 운동을 해 덩치가 좋고 건장했던 동생인지라 비보를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고 했다. 김씨 부모는 친지들과 논의 끝에 아들의 빈소를 동국대일산병원에 마련하기로 했다.

양한주 이형민 이의재 기자 1wee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