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글로벌 반도체 ‘빅5’ 가운데 유일하게 감축·감산 대신 투자를 선택했다. 인텔은 지난 27일(현지시간) 올해 3분기 실적을 발표하면서 내년 운영비용 중 30억 달러를 절감하겠다고 밝혔다. 2025년까지 80억~100억 달러 규모의 운영예산을 줄인다는 계획도 내놨다. 올해 설비투자는 기존 계획 대비 약 8% 하향 조정했다.
SK하이닉스와 미국 마이크론은 내년 설비투자 금액을 기존 계획보다 각각 50%, 30% 이상 감축한다고 발표했다. 물가 상승에 따른 IT기기 수요 둔화, 반도체 다운 사이클에 대응하기 위해 투자 예산의 삭감이 불가피하다는 이유에서다. SK하이닉스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불황으로 유발되는 공급 과잉을 해소하는 차원에서 생산 계획도 낮춰잡았다. 제품 중 수요가 강하지 않아 수익성이 낮은 제품을 중심으로 감산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와 달리 삼성전자는 정반대의 행보를 예고했다. 메모리 반도체 분야의 투자를 줄이지 않겠다는 기조를 지난 26일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명확히 했다. 중장기 수요 대응을 위해 적정 수준으로 인프라 투자를 지속할 방침이다.
이를 놓고 반도체 업계에서는 다시 치킨게임이 벌어질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수요 위축, 공급 과잉으로 반도체 가격이 내림세를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감산을 하지 않으면 가격 하락폭은 더 커질 수 있다. 버티려는 기업들 사이에서 ‘출혈경쟁’도 벌어질 수 있다. 삼성전자는 다른 업체보다 원가경쟁력과 선단 공정 기술력이 앞선다. 때문에 SK하이닉스나 마이크론이 수익성 하락을 버티지 못하고 고사할 수 있다. 2000년대 중반의 치킨게임에서는 대만과 일본의 D램 기업들이 버티지 못하고 모두 사라졌다. 당시 삼성전자는 “다시는 치킨게임을 하지 않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과거와 같은 ‘파국’이 일어나지는 않는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비슷한 규모의 기업이 많으면 출혈경쟁으로 반도체 업계 전체가 타격을 입지만, 현재는 규모가 큰 기업 3곳이 시장을 나누고 있다. 업황 개선 때까지 버틸 여력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삼성전자의 투자가 생산량 확장보다 공정 고도화, 기술 투자 등에 집중되고 있다는 점도 당시와 다른 점이다. 공정 전환 과정에서 기존 반도체 생산량은 줄어들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감산이 일어난다. 김영우 SK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삼성전자는 규모의 경제, 원가 경쟁력, 현금성 자산 측면에서 감산할 필요가 없다. 메모리 반도체 분야의 경쟁사와 비교해 ‘나 혼자만 레벨업’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분석했다.
전성필 기자 f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