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드라마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새로 부임한 미술관 관장이 특별전 유치를 위해 억만장자인 컬렉터를 만나 회유를 시도한다. 둘은 술에 취해 좋아하는 작품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수십 년 전 원본이 유실된 것으로 알려진 관장이 가장 아끼는 작품을 컬렉터가 소장하고 있다. 관장은 컬렉터가 보여준 작품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컬렉터는 그 모습을 부러워한다. 작품은 작가가 12년간 매일매일 사랑하는 여인의 몸을 찍은 사진이다. 관장은 한 존재의 심연을 들여다보려는 열정적인 감정의 신비를 느낄 수 있다고, 사랑하는 사람의 내면을 이렇게까지 더듬어볼 수 있는 애정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없다고 말한다.
나는 영원히 나로만 살 수 있기에 이번 삶은 내내 내 몸 안에 갇혀 있는 셈이다. 나는 누군가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커튼 사이로 들어온 빛이 불러일으키는 감각을 알지 못한다. 나는 그가 침대에서 내려와 처음 밟는 방바닥의 감촉을 가늠하지 못한다. 밤새 마른 목으로 물을 몇 번 삼키는지, 머릿속에 떠오른 아침 메뉴 후보는 무엇인지, 어제 지나가던 사람이 잠시 보낸 눈빛이 그에게 어떤 감정으로 남아 걸을 때마다 거슬리는지, 펜을 잡는 것과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의 차이를 어떻게 느끼는지, 그의 가장 내밀한 욕망은 무엇인지, 자기 전 눈을 감으면 어떤 장면을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지 알지 못한다. 어떤 음악이 그에게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는지, 나의 눈에 보이는 하늘의 색과 그의 눈에 비치는 하늘의 색이 어떻게 다른지 역시 전혀 알 수 없다. 지금도 그 사람을 스쳐가고 있을, 문장으로 적을 수도 없는 수많은 순간을 나는 짐작조차 하지 못한다.
내가 들여다볼 수 있는 타자의 심연은 고작 나의 망상 깊숙한 곳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연결되어 있지만 그만큼 멀리 떨어져 있다. 오늘은 타자의 부고를 듣고 눈물을 흘렸지만 내일은 맛있게 점심을 먹을 수도 있으리라는 사실이 괴롭다.
김선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