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결혼을 한 외국인 A씨와 한국인 B씨는 최근 2년 사이 경기도 소재 단독주택 7가구를 모두 45억원에 매수했다. 거금이 투입됐지만 어떻게 자금을 마련했는지는 오리무중이다. 2020년 3월 이후 부동산 거래는 자금 출처를 명시해야 하지만, 이들은 그 과정을 생략했다. 외국환을 불법으로 반입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돼도 정부가 확인할 방법이 없다. 외국인인 A씨는 국내 거주지가 불분명해 자금 출처 소명조차 받기 힘들다. 강화된 부동산 규제에 불법행위가 힘들어진 내국인과 달리 외국인은 현행 법망을 우회하기가 쉽다.
각종 규제를 회피해가며 불법·편법으로 국내 부동산 시장을 휘젓던 외국인들의 실체가 정부 합동 조사를 통해 드러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5월까지 2년 5개월간 외국인 주택 매수 사례 2만38건을 전수조사한 결과 1145건의 이상 거래를 확인했다고 28일 밝혔다. 전체 거래 중 5.7%에 달하는 비정상 거래 유형을 보면 내국인이 껴 있는 사례가 다수를 차지한다. 국토부가 예시로 든 사례를 보면 국제결혼한 부부, 외국인의 한국인 사위, 한국국적을 포기한 자녀와 모친 등이 거래에 얽혀 있다. 외국인 국적 분포는 중국(55.4%)이 과반이었다.
유형별로는 A씨 사례와 같은 소명자료 미제출 건이 177건으로 가장 많다. 비트코인 환치기 등을 통해 해외 자금을 신고없이 들여 온 것으로 파악되는 사례가 그다음으로 많은 121건이다.
외국인이라는 특성을 부동산 투기에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일례로 내국인은 대출 제한 때문에 ‘현금 부자’가 아니면 서울 등 규제 지역 부동산 구매가 힘들다. 반면 외국인은 자국에서 손쉽게 대출받을 수 있다. A씨처럼 해외에 거주하는 이들은 문제가 있어도 조사가 쉽지 않다는 점도 악용된다.
국토부는 국세청·관세청·법무부와 협업해 외국인 관련 부동산 거래 제도를 꼼꼼하게 손보겠다고 밝혔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이날 “외국인 불법 투기를 철저히 뿌리 뽑겠다”고 말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