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촌 이내의 친족과 결혼한 경우 혼인 자체를 무효로 하는 민법 조항은 헌법에 어긋나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헌법재판소 판단이 나왔다. 결혼한 이후 8촌 이내임을 알게 된 경우에도 무조건 혼인을 무효라고 하는 건 너무 가혹하며, 무효 대상인 근친혼의 범위도 광범위하다는 취지다. 다만 8촌 이내의 결혼을 금지한 조항은 합헌 결정이 내려졌다.
헌재는 27일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8촌 이내 혈족과 결혼 시 혼인을 무효로 하는 민법 815조2호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해당 조항은 개선 입법이 이뤄지지 않을 시 2024년 12월 31일 이후 효력을 잃게 된다. 8촌 이내 친족과의 결혼을 금지한 민법 809조1항은 재판관 5대 4 의견으로 합헌 결정이 나왔다.
이번 헌법소원 사건은 혼인무효 소송 중인 A씨가 청구했다. A씨의 배우자는 A씨에게 이혼을 요구했다가 거절당하자 6촌 관계임을 이유로 혼인무효 소송을 제기했다. 1·2심은 모두 혼인 무효 판결을 내렸다. A씨는 상고한 뒤 민법상 8촌 이내 혈족의 혼인 금지와 혼인 무효 조항에 대해 헌법소원을 냈다.
헌재는 8촌 이내 결혼 시 혼인을 무효로 한 조항은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된다고 판단했다. 이선애 이은애 이종석 이영진 이미선 재판관은 “서로 8촌 이내인 것을 우연한 사정으로 사후 확인하게 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며 “그럼에도 예외 없이 일방당사자 등이 언제든 혼인무효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데, 이는 당사자나 자녀들에게 지나치게 가혹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유남석 이석태 김기영 문형배 재판관은 “무효로 되는 근친혼의 범위가 지나치게 광범위하다”고 짚었다. 이 조항에 따라 근친혼 당사자들 간에 태어난 자녀가 혼외자가 될 수 있다는 점도 우려했다. 헌재는 다만 8촌 이내의 혼인을 금지한 조항 자체는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봤다. 가까운 혈족 사이에서 발생할 수 있는 혼란을 방지하고 가족제도의 기능을 유지한다는 근친혼 금지 조항의 입법 목적이 정당하다는 것이다.
헌재는 “법률혼이 금지되는 혈족의 범위는 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넓은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역사·종교·문화적 배경이나 생활양식의 차이로 인해 상이한 가족 관념을 갖고 있는 국가 사이의 단순 비교가 의미를 가지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반면 유남석 이석태 김기영 문형배 재판관은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이들은 “해당 조항은 근친상간 금기의 범위를 훨씬 넘어 8촌 이내 혈족을 모두 금혼 대상으로 삼고 있다”며 “8촌 이내를 근친으로 여기는 관념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통념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임주언 기자 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