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태 강원지사가 지난달 28일 춘천 레고랜드 사업을 위해 채권시장에서 2050억원을 빌린 강원도중도개발공사(GJC)에 대한 회생신청을 발표하자 채권시장이 충격에 빠졌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김 지사는 지난 24일 “자금시장에 불필요한 혼란과 오해가 초래돼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면서도 GJC 회생절차는 계속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많은 전문가들이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하는데도 김 지사가 GJC의 기업회생을 끝까지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최문순 전 강원지사의 역점사업인 춘천 레고랜드는 2011년 9월 영국 멀린사와 투자합의각서 체결로 시작됐다. 하지만 사업부지에서 청동기 유물이 발견되는 등 우여곡절 끝에 사업 추진 11년 만인 지난 5월에야 문을 열었다.
GJC는 2012년 도가 대주주로 참여해 만든 레고랜드 사업 특수목적법인이다. 2020년 2050억원 규모의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을 발행해 기반시설 공사를 진행했다. 빌린 돈은 레고랜드 주변 땅을 팔아 갚기로 했다. 하지만 땅이 잘 팔리지 않아 GJC는 자본잠식 상태에 빠졌다.
강원도가 레고랜드에 투자한 돈은 기반시설과 주변부지 개발 등 1419억원이다. GJC 투자 4542억원을 합하면 5961억원에 달한다. 또 멀린사에 테마파크 부지 28만790㎡를 최대 100년간 무상으로 내줬다. 멀린사는 현재까지 레고파크, 호텔 등 사업에 2200억원을 투자했다.
그런데 막대한 투자에도 불구하고 강원도의 수익은 ‘제로’에 가깝다. 도와 멀린사는 첫 계약 당시 테마파크 연간매출이 800억원 초과시 10%의 수익을 받기로 했지만 2018년 수익율 재조정을 거치면서 1000억원 이상인 경우 0.18%로 확 낮아졌다. 도의회는 이런 문제를 짚어보려고 수년간 GJC 측에 토지 매각 등 자료제출을 요구했지만 매번 퇴짜를 맞았다. 지난 7월에도 자료를 요구했지만 GJC는 ‘정보보호 의무’를 들어 공개하지 않았다.
빚 2050억원을 떠안은 도는 여전히 GJC의 부채 등 경영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김 지사는 취임 4개월이 지난 현재도 GJC로부터 레고랜드 총괄개발협약서, 채무 현황, 토지매매 등 구체적인 자료를 건네받지 못했다.
이는 도의 감독을 받지 않는 GJC 구조 때문이다. 도는 GJC 총출자액 221억8200만원 중 44%인 97억6300만원을 출자해 대주주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지분이 50% 미만이어서 GJC는 지방공기업법이 아닌 상법 적용을 받는다. 도가 관리감독할 수 없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이다.
결국 GJC 관리감독을 하지 못하는 강원도는 기업 회생신청 카드를 꺼내들었다. 법원의 도움을 받아 GJC가 레고랜드 인근 부지를 헐값 또는 특혜 매각했는지를 들여다보고 사실이면 이를 막기 위한 것이 가장 큰 목적인 셈이다.
토지 헐값 매각 의혹은 계속 불거져 나오고 있다. 하석균 강원도의원은 최근 “지난 3월 GJC가 매각한 19개 필지 1만4090㎡는 공시지가 기준 105억4400만원인데, 특정업체에 59억7000만원에 판 것으로 추정된다”며 헐값 매각 의혹을 제기했다.
지난 5월에는 GJC가 자본금이 낮은 두 회사와 상가용지 6만7600㎡를 837억5000만원에 계약했다는 특혜 의혹도 나왔다. 혈세낭비 레고랜드 중단촉구 범시민대책위원회는 “자본금을 모두 합해도 1억1000만원에 불과한 두 회사가 837억원에 달하는 부지를 사들이려고 한다”며 “두 업체의 주소, 대표이사 이름이 같고 다른 사업 경력을 찾아보기 힘들다. 급조한 페이퍼컴퍼니로 의심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송상익 GJC 사장은 “그동안 토지 매각은 감정가 기준에 따르는 등 적법한 기준과 절차를 거쳤다”며 “10년간 GJC에는 도 공무원이 파견됐고, 도 지휘부에 현황 설명을 해왔다. 자료를 공개하지 않아 회생신청을 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반박했다.
강원도는 11월 중 법원에 기업회생 신청을 할 계획이다. 회생이 시작되면 법정관리인이 잘못된 계약이나 업무처리가 없었는지 점검하고 기존 사업을 재구성해 새로운 인수자를 찾는다.
기존 계약자가 중도개발공사와 맺은 토지매매 계약 중 잔금을 치르지 않은 계약은 파기되고 계약금과 중도금만 돌려받는다.
하지만 회생신청에 대한 실효성은 여전히 의문이다. 회생신청이 받아들여져도 도가 보증을 선 돈은 전혀 줄지 않고, 침체된 부동산시장 상황을 감안하면 제값을 받고 부지 매각을 완료하는 게 어렵기 때문이다. GJC는 현재 41만7000㎡ 부지 중 86%인 36만㎡를 매각했고 5만7000㎡가 남아 있다. 하지만 이 중 대금이 모두 납부된 곳은 1만3000㎡, 1개 필지에 불과하다.
일각에선 강원도가 미숙한 조치로 얻는 것 없이 시장에 충격만 준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강원평화경제연구소는 “GJC를 난데없이 회생신청으로 가져갔다. 미숙한 정책 결정에 기인한 책임은 피해 갈 수 없다”고 지적했다.
법원이 회생을 받아들일지도 미지수다. 이에 도는 법원의 회생신청 거부를 상정한 대책도 마련하고 있다. 도는 기업회생이 불가능할 경우 GJC의 강원도 지분을 50% 이상으로 끌어올리거나, 이사회를 통해 경영혁신을 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검토 중이다. 김진태 지사는 “방만경영을 한 GJC에 대한 회생신청이 받아들여져 투명하고 효율적인 자산매각이 이뤄지길 바란다”며 “회생을 통해 강원도의 재산을 투명한 절차에 따라 제값을 받고 팔겠다”고 말했다.
춘천=서승진 기자 sjse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