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의 생물학자 레슬리 휴즈가 2000년 일부 생물종이 기후의 이상 징후에 반응해 이동하기 시작했다는 사례를 보고한 후 지난 20년간 많은 생물학자들이 동식물종의 서식지 이동을 분석했다. 이 사례들은 “전 세계의 생물종들이, 그러니까 코끼리부터 바닷속 아주 작은 규조류에 이르기까지 모두 양 극지방 쪽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프랑스 생물통계학자인 조나탕 르누아르는 그동안 조사된 생물이동 사례를 모두 정리해 데이터파일로 만들고 여기에 ‘바이오시프트(Bioshifts)’라는 이름을 붙였다.
‘피난하는 자연’은 바이오시프트에 대한 현장 보고서다. 독일 환경저널리스트인 저자는 4년에 걸쳐 전 세계를 다니며 생물종의 서식지 이동을 취재했다. 연구자들을 만나고 어부나 삼림감독관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확인했다.
눈토끼, 백두루미, 고라니 같은 아한대 기후에 사는 숲동물들은 극지방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 지역에서 오래전부터 살아온 사향소와 순록, 북극여우 같은 토착종들은 사라지고 있다. 2019년 9월 이후 북극고래는 한 마리도 잡히지 않았다. 일부 종은 멸종하고 지역이 겹친 곳에서는 교배 잡종이 탄생하고 있다. 북극곰과 불곰이 짝짓기를 하고 있다.
이웃나라 일본의 경우, 바다 멀리에서부터 해조류 숲이 급속히 사라지고 있다. 고치현 토사만에 대한 조사를 보면 1997년부터 해조류가 아예 자라지 않거나 아주 볼품 없는 정도로만 남게 되었다. 원인은 해수 온도 상승. 1980년대 이후 일본 남서부의 해수는 10년에 0.3도씩 상승해 왔다. 토사만의 겨울은 30년 전보다 1.7도가량 더 따뜻해졌다.
이번 세기가 끝날 때까지 수만 종의 생물이 국경을 넘어 몇몇 나라에서 완전히 떠나 버릴 수 있다. 예를 들면 유럽너도밤나무나 가문비나무 등이 독일의 풍경에서 사라질 수 있다.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 삼림연구소의 가문비나무 기후적응 시뮬레이션을 보면, 2050년이 되면 가문비나무를 더 이상 못 키우게 될 수도 있다.
생물종의 ‘적도 대탈출’ 현상도 관찰된다. 열에 가장 민감한 유기체인 산호초가 열대 바다에서 온대 바다로 은밀히 돌진하는 대탈출의 선두다. 1998년 이후 호주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에서 대규모 산호 백화현상이 네 번이나 일어났다. 산호 백화현상은 이제 전 세계의 모든 열대 수역으로 퍼져 나가고 있다.
그렇다. 지구는 뜨거워졌고, 생물종들의 피난은 이미 시작되었다. “그것은 이제 예측이 아닌, 관찰되는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인간은? 지금이나 500년 전이나 6000년 전이나 세계의 인구는 언제나 기온은 13도, 습도는 비교적 낮은 편에 집중돼 있었다. 그런데 앞으로 50년 안에 현재 기온이 평균 13도인 지역이 20도까지 올라갈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된다. 생물종의 이 긴 피난 행렬에 인간 또한 동참할 수밖에 없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