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중국 젊은이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지식인이 있다. 중국 원저우 출신의 인류학자 샹뱌오(Xiang Biao·50). 베이징대를 졸업한 그는 2004년에 영국 옥스포드대 인류학과 교수가 됐고, 2021년부터 독일 막스플랑크 사회인류학 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서양에서도 인정하는 석학이 된 샹뱌오는 2020년 ‘방법으로서의 자기’라는 대담집을 중국에서 출간했다. 유럽에서 활동하며 현대 중국 사회를 연구하는 샹뱌오는 중국 청년들과의 대화를 위한 방법으로 이 대담집을 만들었고, 이 책이 중국에서 20만부 이상 판매됐다.
‘주변의 상실’은 샹뱌오를 국내에 처음 소개하는 책이다. ‘방법으로서의 자기’를 1부에 수록했고, 2부에 샹뱌오의 최근 인터뷰와 대담들을 저자로부터 받아 실었다. 홍콩 민주화 운동이나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샹뱌오의 논평은 국내에서도 주목을 받았다.
“굉장히 중요한 문제는 중국인들이 자기 주위 세계에 몰입해서, 하나의 서사를 만들고자 하는 욕구나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초월감‘만’ 가지고 있게 된 것이죠. 이제 사람들은 자신의 주변 세계를 돌아보지 않습니다. 주변 세계는 버리고 떠나야 하는 것이 되어버렸죠.”
“오늘날 우리는 도시의 새로운 빈곤층을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겪고 있는 것은 ‘경제적 빈곤’이 아니라 ‘의미의 빈곤’입니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은 (목적을 위한) 하나의 ‘수단’이에요. 하지만 수단 그 자체를 넘어 특정한 ‘의미’와 결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이들은 중국이 현대화를 개시한 상징 중 하나가 관료가 은퇴 후에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게 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은퇴 후에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는 풍조가, 현대에 접어들어 중국의 중앙과 주변, 그리고 도시와 농촌, 지식인과 일반 군중(주로 농민)의 관계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샹뱌오는 사실적이고 실용적이면서도 공공적인, 그래서 매우 독창적인 관점을 보여준다. 사회과학은 흔히 분석이라고 여겨지는데, 샹뱌오는 사회과학은 우선 제대로 묘사하고 서술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세상이 사회과학자에게 요구하는 작업은 복잡한 사정을 명확하게 기술하는 것이라면서.
샹뱌오는 이를 위해 ‘방법으로서의 자기’라는 방법론을 제시한다. 여기서 ‘자기’는 자기 삶의 구체적 경험이자 자기 삶을 구성하는 ‘주변’과 ‘생활’, 그리고 보다 확장된 ‘로컬(지역)’까지 포함한다. ‘자기’의 반대 편에는 담론, 중심, 국가가 있다. 그러니까 담론, 중심, 국가에서 시작되는 엉성한 이야기들을 비판하면서 자기, 주변, 생활, 로컬에서 출발하는 명징한 이야기를 강조하는 것이다.
“어떤 문제든 그게 진짜 문제라면 모두 로컬한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큰 문제는 사회 조사, 사회분석 이론이 모두 이미 지나치게 글로벌화돼 있다는 겁니다… 이런 식으로는 실제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표현하기가 어렵습니다… 문제의 내부에 있는 디테일한 특성이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요?”
예컨대, 정치적 올바름에 대해서 사람들이 반감을 갖는 이유에 대해 샹뱌오는 “이런 이념이 틀렸거나 거짓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너무 속 빈 강정 같다는 것이죠”라고 답한다. 우리는 왜 초조함을 느낄까?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오늘에 대한 명철한 인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 있는 이곳에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고, 자기가 생각하는 것과 차이가 있지만 제대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동안 자기, 주변, 생활, 로컬 등은 비핵심적인 것으로 여겨져왔다. 그래서 거대 서사가 현실을 설명해왔다. 샹뱌오는 이런 풍토에 대해서 “많은 사람이 늘 ‘폼을 잡는데’ 구체적으로 명확한 설명은 못 하죠. 그냥 단정적인 주장을 늘어놓는 겁니다”라며 “오늘날의 사상은 반드시 학술 조사와 연구, 상세하고 엄밀한 사고를 필요로 합니다. 결국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명확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떠해야 한다는 당위가 아니라요”라고 비판한다.
샹뱌오는 싱가포르에서 거주하기도 했는데 싱가포르는 주변에 대한 의식이 왜 힘이 되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싱가포르는 자기 나라가 ‘주변부’ 국가라는 사실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주변부라는 사실을 동력으로 삼습니다. 그걸 저주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작은 지방에서 세계를 더 명징하게 이해합니다… 세계의 중심이 아니면 그 나라나 지역은 의미가 없는 것일까요?”
말은 무성하지만 공허하게 울리는 시대, 많은 문제들에 대해 그 원인도 해법도 못 찾는 시대, 모두 자기에 몰두하면서도 진정한 자기는 찾지 못하는 시대, 샹뱌오는 이 혼돈의 시대를 꿰뚫어낼 키워드로 자기를 제시한다. 샹뱌오의 대담은 학문의 의미, 지식인의 역할, 신자유주의, 일체화된 시장경쟁, 플랫폼 경제, 빈곤과 노동, 로컬과 글로벌, 문명과 전쟁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며 의미의 즉각성, 부근의 소실, 잔혹한 도덕주의 같은 독창적인 개념들을 전개한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