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혼자 한국에 온 탈북민 김모(53)씨는 화물운송기사로 일하며 생계를 이어왔지만 지난 5월 갑자기 회사가 부도나면서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었다. 생계가 막막해진 김씨는 취업정보전문업체를 통해 한 ‘부동산 회사’를 알게 됐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 업체라 불안했던 김씨는 탈북민의 취업을 지원하는 하나센터에 도움을 청했다. 센터는 “등급은 낮지만 실제로 있는 회사”라며 김씨를 안심시켰다. 이를 믿고 해당 업체에 취업한 김씨는 한동안 거래처에 돈을 전달하는 업무를 수행했다. 하지만 김씨가 전달한 돈은 보이스피싱으로 빼돌린 돈이었고, 그가 돈을 전달한 이는 수거책이었다. 김씨는 지난 6월 경찰에 체포돼 재판을 앞두고 있다.
김씨는 자신도 모르게 범행에 연루됐다는 입장이다. 보이스피싱 연루 사실을 알게 된 김씨는 경제적, 심리적으로 위축돼 정서적 고립이 더욱 심해졌다. 낯선 땅에서 아무에게도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절망감이 더해지면서 극단적 선택을 떠올리기도 했다고 한다. 현재는 일용직으로 하루하루 겨우 버티고 있다. 그런 김씨에게 지난 19일 백골 시신으로 발견된 탈북민의 사연은 남의 일이 아니다. 김씨는 “나도 형제나 친척이 아무도 없는데 같은 탈북민으로서 내 일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며 마음 아파했다.
서울 양천구 한 임대아파트에서 탈북민이 백골 상태 시신으로 발견된 후 고립 위기에 놓인 탈북민들의 상태를 하루빨리 살펴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회적 연결망이 촘촘하지 못한 탈북민들이 고립될 경우 신변의 위험이 심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다른 탈북민 50대 이모씨도 고립될 위험에 놓여 있었다. 소아마비를 앓고 있는 이씨는 5년 전 남편, 중학생 아들과 함께 한국으로 넘어왔다. 그러나 생활이 어려워지자 남편은 이씨와 아들을 버리고 떠났다. 이씨와 아들이 지내는 서울주택도시공사(SH) 임대아파트를 비롯해 기초생활수급비 등 각종 지원이 남편의 명의로 돼 있어 지원이 원활치 않았다. 이씨는 “나도 한때 너무 힘들어 아들과 같이 옥상에도 올라갔었다. 그나마 탈북민 단체에서 매일 집에도 들여다보고 해준 덕분에 아직까지 살고 있다”며 울먹였다.
통일부가 지난 1월 발표한 2021년 하반기 ‘북한이탈주민 취약계층 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자 1532명 중 약 47%가 교육·진학과 정신건강을 포함한 정서적·심리적인 부분에서 어려움을 호소했다.
전문가는 심리적 고립이라는 장벽이 탈북민들의 고독사와 연결된다고 지적한다. 오은경 상담심리전문가는 “탈북민들은 사회 속에서 촘촘하게 연결돼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채 지내다 보니까 고립으로 사망하는 일이 벌어지게 된다”며 “위기에 처한 탈북민을 직접 찾아가면서 위기를 다각적으로 걸러내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성윤수 기자 tigri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