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아파트숲이 지운 공간… 그 곳에 살던 사람들 얘기

입력 2022-10-27 20:46 수정 2022-10-27 23:52
지금은 아파트 숲이 된 서울 동작구 상도동의 철거 전 풍경으로 2011년 1월에 촬영한 사진이다. 아래 사진은 경의선숲길에 인접한 서울 용산구 도원동의 한 아파트단지. 재개발 전에는 시골에서 상경한 강정희씨 같은 서민들의 주거지였다. 빈곤사회연대·김윤영 제공

“서울의 아파트가 있는 자리라면 누군가는 이곳에서 쫓겨났다고 봐도 좋다. 서울에서 개발은 집 없는 사람들을 탈락시키는 일이었다. 개발 지역에 살던 세입자에게는 임대 아파트나 이주비 등의 대책이 마련돼 있긴 했지만 여기에서 제외되는 사람이 더 많았다.”

‘가난한 도시생활자의 서울 산책’은 빈민활동가 김윤영이 자기 삶의 터전에서 쫓겨난 이들과 함께 싸우며 쌓아올린 기록이다. 아파트숲과 빌딩숲이 지운 가난의 자리엔 그곳에 살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경의선숲길과 용산, 아현동, 청계천, 종로엔 누군가의 보금자리가 있었다. 서울은 점점 화려해지고 있고, 빈민을 몰아낸 자리엔 10억을 호가하는 아파트들로 이뤄진 주거지역이 들어섰다. 그럼 서울에서 빈곤은 사라진걸까.


저자는 빈곤사회연대에서 2010년부터 활동하고 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시설사회’ ‘유언을 만난 세계’ 등을 함께 썼다. 이번 책에서는 12년간 함께해 온 철거민과 노점상, 홈리스, 장애인들의 이야기로 작은 골목에서 쫓겨난 서민들의 삶을 전한다. 당사자들과의 인터뷰, 거리에서 보고 겪은 일들, 싸우기 위해 쌓아 온 자료들에 입각해 하루아침에 거리에 나앉게 된 그들이 평범한 이웃이자 시민이었음을 보여준다.

지금 경의선숲길의 시작점에는 용산 e편한세상 아파트가 있다. 아파트가 들어서기 전 그곳에는 강정희의 텐트가 있었다. 그는 전남 영암에서 상경한 부모가 터를 잡은 용산구 신계동과 도원동을 오가며 1988년부터 20여년을 살았다. 2004년 수립된 ‘신계 구역 주택 재개발 정비 사업’은 강정희의 인생을 바꿔놨다. 도원동으로 이사갔다가 신계동으로 돌아온 시점이 재개발구역으로 지정된 직후여서 이주비 보상을 받을 수 없었던 그는 돈도 없고 갈 곳도 없었다.

“딸내미가 그때 딱 중학교 3학년인가, 고등학생인가 그랬는데 용역 깡패가 뒤쫓아오면서 그래, ‘네 딸 이쁘더라. 이사 안 가면 네 딸 콱 어떻게 해버린다.” 강정희는 말했다.

박준경은 2008년부터 어머니와 함께 아현동에 살았다. 막다른 골목 끄트머리에 있는 낮은 천장의 단층집은 보증금 300만원에 월세 20만원이었다. 2016년부터 아현2구역 개발에 따라 퇴거하라는 압박이 있었지만 그와 어머니는 떠날 수 없었다. 아현2구역은 아현 뉴타운 8개 구역 중 유일한 재건축 지역이었는데, 재건축은 세입자에 대한 보상 대책을 의무로 하지 않는다.

일용직으로 일하던 박준경은 철거 위협 때문에 일도 나갈 수 없었다. 2018년 여름부터 강제집행이 속도를 내면서 폭력의 강도는 높아졌다. 9월이 되자 용역 다섯 명이 그의 어머니를 이불로 말아 들고 나왔고, 세간살이는 트럭에 실려갔다. 빈집을 지키던 모자는 12월에 쫓겨났다. 찜질방에라도 가 있으라며 5만원을 건넨 어머니와 헤어지고 사흘 뒤 그는 주검으로 발견됐다.

쫓겨난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건 동료 시민들의 편견이라고 책은 전한다. 철거민들에겐 자기 분에 맞지 않는 권리를 달라고 생떼를 쓴다는 비난이, 노점상들에겐 세금을 내지 않고 자기 것이 아닌 공간을 점유하며 불법적으로 장사를 한다는 비난이 쏟아지곤 한다. 저자는 우리가 빈곤한 이들의 어떤 특성을 볼 때 그것이 빈곤의 원인인지 결과인지를 생각해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