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선교’ 대 이은 도지 아펜젤러, 근대교육 헌신하며 사회복지 초석

입력 2022-10-27 03:05

미국 감리교 선교사 헨리 거하드 아펜젤러(1858~1902)는 한국교회에 엄청난 유산을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1885년 조선에 첫발을 내디딘 그는 1902년 불의의 선박 사고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이 땅에 복음을 전파했다. 한국교회사에 선명한 무늬를 남긴 대표적 초기 선교사다.

하지만 그의 아들인 헨리 도지 아펜젤러(1889~1953·사진·이하 도지 아펜젤러)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편이다. ‘아버지 아펜젤러’의 순직 120주기를 맞아 26일 대전 배재대 아펜젤러기념관에서 열린 ‘제1회 아펜젤러연구소 학술포럼’은 도지 아펜젤러에 초점을 맞췄다는 사실만으로도 눈길을 끄는 행사였다. 배재대 아펜젤러연구소가 개최한 포럼에선 도지 아펜젤러의 삶을 기리는 발표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1889년 서울 정동에서 태어난 도지 아펜젤러는 유년기를 한국에서 보냈다고 한다. 그는 안식년을 맞은 아버지와 함께 1900년 미국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대학 교육까지 받게 된다. 하지만 1917년 미국 북감리교의 파송으로 다시 한국 땅을 밟는다. 그는 배재학당 교장으로 일하면서 교육 선교에 매진하다가 미·일 관계가 악화일로로 치닫자 결국 1940년 미국으로 돌아가게 됐다.

서영석 협성대 교수는 도지 아펜젤러가 그즈음까지 벌인 사역들을 소개하면서 “그는 교육의 근본 목적이 기독 신앙인을 만드는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교육에 대한 도지 아펜젤러의 열정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은 한국의 근대교육사에 계속 남아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1940년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지만 이후에도 한국인을 향한 그의 사랑은 어어졌다. 가령 해방 이전인 1945년 5월 13일 도지 아펜젤러는 라디오 방송을 통해 “저들(한국인)에게 새 인내와 힘을 주소서”라고 기도하기도 했다. 소요한 감리교신학대 교수는 1940년부터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의 행적, 고인이 남긴 설교문을 소개하면서 “도지 아펜젤러는 주변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한국인을 양육하고자 했다”고 전했다.

도지 아펜젤러는 6·25전쟁이 발발하자 다시 한국을 찾아 다양한 구제 사역을 벌였다. 전쟁 당시 그가 벌인 사역을 중점적으로 소개한 이는 최청순 아펜젤러연구소 연구원이었다.

최 연구원은 “아펜젤러 부자(父子)는 사회복지의 기본이념인 봉사와 헌신의 정신을 한국 땅에 새겼다”면서 “도지 아펜젤러가 한국전쟁 당시 벌인 구호 사역은 오늘날 한국 사회복지 발전의 초석이 됐다”고 평가했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