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 고물을 고물로 바꾸는 재활용이 아름답다

입력 2022-10-27 04:04

요즘 대도시는 말할 것도 없고 지방 중소도시를 다니다 보면 도로는 물론이고 상점, 시장도 깔끔하게 잘 정리 정돈돼 있음을 실감한다. 대표적으로 전통 재래시장의 변화를 꼽을 수 있다. 넉넉한 인심은 그대로 간직하며 과거와는 완전히 다르게 깔끔한 외관을 갖춰 관광자원으로도 각광을 받는다. 세대를 막론하고 가족 단위로 발걸음이 향하는 것을 보면 더 푸근하다.

그런가 하면 몇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변하지 않은 풍광도 있다. 이른바 고물상이라 불리는 곳이다. 담장 몇 개 듬성듬성 세워놓고 그 안에는 폐품들이 어수선하게 쌓여 있다. 폐지, 구리, 알루미늄, 철을 포함한 다양한 것들을 수북이 담은 리어카가 수시로 들어가고 나간다. 가끔은 큰 집게차가 이것들을 담는 모습도 눈에 띈다. 재활용의 일차 집산지 현장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다른 곳은 모두 변하는데 왜 이곳만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꼭 같은 모습인지 궁금하다. 유난히 고물상만 낙후된 모습으로 남아 있다 해도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더욱이 요즘은 재활용이 지속가능한 미래를 담아내는 시대의 키워드로 여겨지고 있는데 말이다. 어디가 막혀 있기에 위축되고 낙후된 모습에서 여전히 탈피하지 못하는지 의아스럽기까지 하다.

친환경 경제로의 재편을 다급하게 요청하는 요즘이다. 재생·재사용·재활용을 높이기 위한 적극적인 움직임이 잰걸음을 넘어 큰 보폭으로 눈에 띈다. 알이백(RE100)이 사회 규범을 넘어 실행 규제로 영향력을 보이기 시작했다. 삼성전자가 지난달 알이백 참여를 발표했다. 국내 주요 기업 20여곳이 참여한다. 탄소 제로를 위한 탄소 배출의 적극적 제한이나 탄소 배출세가 거론되는 상황이다. 특히 재사용·재활용을 높이기 위한 유럽연합(EU)의 선택은 더 적극적이다. 용어 자체가 상징성을 지닌 디지털 제품 여권(Digital Product Passport)이 그중 하나다. 제품을 수리하거나 재사용한 자원이 오랫동안 경제에 남아 있는 것을 목표로 한다. 생산단계에서부터 재활용품을 우선해 사용할 것을 강하게 주문한다.

중국은 환경 문제에서 가장 많은 지탄을 받는 경제 대국이다. 중국 역시 지속가능 미래의 압력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그 해결을 위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근자에 들어 중국은 과거와 달리 일반적으로 폐자원이라 불리는 스크랩(scrap)을 그대로 수입하지 않는 정책을 펴고 있다. 일례로 구리 스크랩의 경우 구리 순도가 97% 기준을 넘어야 원자재로 인정되고, 이런 조건을 충족한 구리만이 수입되도록 허가한다. 이런 상황에서 스크랩을 임가공해 원자재로 만들어 중국 원자재 시장을 공략할 필요가 있다.

재활용 임가공 사업은 확장 가능성이 매우 크다. 밖으로 쏟아버리기보다는 경제 사이클 안으로 끌어들이는 일이기에 여러 가지로 의미하는 바가 크다. 자원을 둘러싼 다툼이 커지면서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만드는 발상의 전환이 점점 더 필요하다. 스크랩 자원화 사업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는 제도만 잘 정비돼도 엄청난 시너지가 만들어진다. 정부는 폐자원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스크랩을 원자재로 보는 산업통상자원부와 폐기물로 보는 환경부의 양극단을 포함해 현장의 목소리가 담길 수 있는 실무 태스크포스(TF)를 만들 것을 제안한다. 한국은 스크랩을 임가공해 원자재로 만드는 데 상당한 노하우와 여건을 갖추고 있다.

국제적으로 폐자원의 가격이 급상승하고 있다는 뉴스가 심심찮게 나온다. 폐자원의 의무 사용이 강화되고 있다. 폐자원을 재활용해 신재와 같은 수준으로 만들어내는 것 그 자체로서 핵심적인 기술이 된다. 스크랩 자원화 사업은 친환경 사회를 향하는 국제 규범에 맞는 것은 물론이고 자원의 사업화를 통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낼 수 있기에 엄청난 가능성을 갖고 있다. 여기에다 사업화의 선순환 구조가 체계적으로 만들어지면 고물상의 미관과 외형이 바뀌는 것은 시간문제이며 모두에게 기분 좋은 덤이다.

재활용은 낡은 고물(古物)을 친환경 사회를 만드는 중심의 하나로 주목받는 고귀한 고물(高物)로 만드는 일이다. 이 시대에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재활용이 불가피한 것은 말할 것도 없으며 스크랩 자원화는 새로운 경제적·사회적 기회를 만들어낸다. 고물을 고물로 바꾸는 재활용이 아름답다고 얘기하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이다.

박길성(고려대 명예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