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에 본사를 둔 인공지능(AI) 기반 신약개발 기업 ‘인실리코 메디슨’은 폐섬유증 치료를 위한 후보 물질을 46일 만에 찾아냈다. 여기 들어간 비용은 15만 달러에 불과했다. 다른 글로벌 제약사에서 비슷한 물질을 발굴하는데 8년이 걸렸다. 비용도 수백만 달러가 투입됐다. ‘AI 활용’이 시간과 비용에서 큰 격차를 낳았다. 인실리코 메디슨은 AI 신약개발 플랫폼을 활용해 후보물질 발굴부터 검증에 이르기까지 필요한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였다. AI 플랫폼 기술이 신약개발 패러다임을 바꾼 것이다.
AI 플랫폼은 오래 전부터 신약개발 기간 단축, 비용 절감 등을 이끌어 내는 혁신 기술로 주목 받었다. 25일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식품의약품안전처 등에 따르면 AI 플랫폼 기술을 신약개발에 활용하면 10~15년 걸리던 걸 3~4년으로 줄일 수 있다. 1조~2조원을 들던 개발 비용은 6000억원으로 낮아진다.
신약 개발은 크게 신약 후보 물질을 찾아내고 이를 실험실에서 테스트하는 ‘전임상 단계’, 전임상 단계를 통과한 물질을 사람에게 시험하는 ‘임상 단계’로 나뉜다. AI는 전임상 단계에서 진가를 발휘한다. 임상 단계는 사람에게 직접 투약하고 경과를 살펴보는 단계이기 때문에 AI 활용은 제한적이다. 반면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하고 처리하는 전임상 단계는 다르다. 학습한 AI는 최적의 물질을 제시하고, 임상 전 동물실험 등의 결과 예측도 가능하다. 코로나19 백신이 빠르게 개발된 것도 AI 덕분이었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세상의 ‘어떤’ 화합물이 인체의 ‘어떤’ 세포나 장기에 ‘어떤’ 질병 치료효과를 가질지 찾아내는 데에는 사실상 무한대에 가까운 데이터 분석과 실험이 요구된다. 약물 가능 화합물만 약 10의 60승개”라며 “후보물질 발굴과 전임상 시험에만도 통상 7년 가까운 시간이 드는데, 여기 소요되는 시간을 AI가 대폭 단축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 기업들은 AI 기술로 무장한 바이오 스타트업과의 오픈 이노베이션 등으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올해 초 한국제약바이오협회가 AI신약개발지원센터와 함께 제약·바이오 및 AI기업 46곳의 62명을 대상으로 AI 도입 현황을 조사한 결과, 54명(87.1%)이 신약개발에 AI를 활용 중이거나 활용 계획이 있다고 답했다.
가시적 성과도 있다. SK케미칼은 올해 초 AI를 활용해 14개월 만에 후보물질 3종을 도출했다. 메디리타는 AI 솔루션 ‘MuN-AI’를 통해 희귀질환 망막색소변성증의 신약후보 물질을 10주만에 발굴했다. 기간 단축효과는 81%에 달한다.
신테카바이오는 최근 한국제약바이오협회에서 주최한 ‘제1회 AI 신약개발 오픈 이노베이션’에 참여해 “현재 AI 기술은 합성신약에 집중돼 있지만, 우리는 바이오 혁신 신약개발까지 확대 적용하고 있다”며 AI 신약 플랫폼 ‘딥매처’와 ‘네오-에이알에스’를 소개하기도 했다. 양현진 신테카바이오 상무는 “(AI 신약 플랫폼을 통해) 합성 신약 후보물질 발굴은 물론, 신생 항원 항암 백신, 면역세포 치료제 개발까지 확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