쪼개진 한국정치… 野 보이콧에 사상 첫 ‘반쪽' 시정연설

입력 2022-10-26 00:02
윤석열 대통령이 25일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 관한 시정연설을 하기 위해 국회 본회의장에 들어서자 여당 의원들이 박수를 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이재명 대표를 겨냥한 검찰 수사에 반발하며 시정연설에 불참해 윤 대통령 뒤편의 민주당 의원들 좌석이 텅 비어 있다. 이한형 기자

대한민국 대통령이 헌정사상 처음으로 국회에서 ‘반쪽’ 시정연설을 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재명 대표를 겨냥한 검찰 수사를 ‘야당 탄압’으로 규정하면서 시정연설을 ‘보이콧’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민주당 의원들의 좌석이 텅 비어 있는 국회 본회의장에서 내년도 예산안을 소개한 첫 대통령이 됐다. 한국 정치의 안타까운 단면이 고스란히 드러난 상징적 장면이었다. 여야의 극한 대립으로 정국은 ‘시계(視界) 제로’ 상태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25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경제와 안보의 엄중한 상황을 극복해 나가기 위해서는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윤석열정부의 첫 예산안에 대한 법정기한(12월 2일) 내 처리를 여야에 당부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그러면서도 “그동안 정치적 목적이 앞선 방만한 재정 운용으로 재정수지 적자가 빠르게 확대됐고, 나랏빚은 1000조원을 이미 넘어섰다”고 지적했다. 문재인정부의 확장재정 기조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감추지 않은 것이다.

윤 대통령은 그러나 검찰 수사 등 민감한 정치 현안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았다.

정의당과 비교섭단체 소속 의원, 일부 무소속 의원은 본회의장에서 시정연설을 들었다. 그러나 169석의 민주당이 역사상 처음으로 불참하면서 윤 대통령이 시정연설을 할 때 본회의장 의석은 절반 이상이 비어 있었다. 윤 대통령의 시정연설 시간도 18분28초로, 역대 ‘최단시간’으로 기록됐다.

이 대표는 시정연설에 앞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이제 정치는 사라지고 폭력적 지배만 남았다”면서 “정치 도의와 국민의 기대를 저버린 것에 대해서 엄중한 심판이 뒤따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윤 대통령이 국회에 도착할 때부터 사전 환담을 위해 국회의장실로 이동할 때까지 본관 로텐더홀에서 ‘국회 무시 사과하라’ ‘야당 탄압 중단하라’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이어 국회 예결위원회 회의장으로 이동해 규탄대회를 이어갔다.

민주당 의원들은 당초 침묵시위를 계획했지만, 윤 대통령이 입장하자 “사과하세요”라는 고성을 쏟아내기도 했다. 이 대표와 박홍근 원내대표 등 지도부는 시정연설에 앞서 열린 대통령과 국회의장 등 5부 요인·정당 대표들 간 사전 환담에도 불참했다.

대통령실은 불편한 감정을 감추지 않았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내년 예산안을 국민께 보고하는 자리에 의원들이 불참하는 헌정사 초유의 상황이 벌어진 것이 매우 유감스럽고 아쉽다”면서 “민주당이 한 특정인의 사당(私黨)은 아니지 않으냐. 공당으로서 책무를 다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시정연설에서도 파행이 빚어지면서 한 달여 남은 정기국회도 가시밭길이 예상된다. 여야의 정면충돌로 내년도 예산안이 법정기한 안에 통과되지 못해 ‘준예산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또 ‘대장동 특검법’과 ‘김건희 특검법’, 양곡관리법 개정안 등 이슈가 지뢰로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최승욱 문동성 안규영 기자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