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치악산, 꿩 전설 품은 단풍, 마음마저 물들인다

입력 2022-10-26 20:57
꿩의 전설 품은 강원도 원주시 치악산 정상. 주봉인 비로봉과 매화산, 향로봉, 남대봉 등 1000m 이상 급 고봉을 여덟 개나 품은 웅장한 산세에 가을색이 화려하다. 멀리 운해 너머로 강원도의 산이 중중첩첩 이어지고 있다.

강원도 원주는 전설 깃든 치악산과 소금산 그랜드밸리 등 자연과 문화예술이 조화를 이룬 도시다. 원주에서 산에 대해 얘기하면 치악산이 가장 앞선다. 설악산이나 지리산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국립공원으로 36년 전인 1984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주봉인 비로봉(1288m)을 중심으로 매화산, 향로봉, 남대봉 등 1000m 이상 급 고봉을 여덟 개나 품은 웅장한 산세가 압권이다.

‘원주 치악산’으로 불리지만 원주와 횡성, 그리고 영월에 걸쳐있다. 붉은 단풍이 아름다워 적악산(赤岳山)이라 불리다가, 뱀에게 먹힐 뻔한 까투리를 구해준 선비가 나중에 그 꿩(雉)의 보은으로 생명을 건졌다는 설화로 치악산(雉岳山)으로 바뀌었다.

이름에 ‘악’자가 들어간 산은 산 중에서도 험한 것으로 악명 높다. 그중 치악산은 ‘치가 떨리고 악에 받친다’는 얘기가 나돌 정도다. 대표적인 곳이 사다리병창을 지나는 구룡사~비로봉 코스다. 구룡사 탐방지원센터를 지나면 왼쪽 둔덕에 황장금표(黃腸禁標)라 쓰인 돌이 있다. 조선시대 궁중용 재목으로만 쓰던 황장목(금강소나무)을 함부로 베어 가지 말라는 경고의 팻말이다. 조금 걸어가면 계곡 옆으로 낸 탐방로의 이름이 황장목숲길이다.

암릉 위 쇠 난간이 있는 사다리병창.

계곡길을 나오면 구룡사다. ‘아홉마리 용’을 일컫는 구룡사(九龍寺)로 불리다가 절 앞 ‘거북 바위’의 기운을 받기 위해 구룡사(龜龍寺)로 바뀌었다. 경내 거대한 은행나무가 노란색 옷으로 갈아입고 있다. 바로 위 철교량에서 바라보는 계곡의 소(沼)가 구룡소다.

세렴폭포까지는 완만해 소풍길이다. 세렴폭포는 높지 않지만 2단으로 휘어져 쏟아지며 가을 운치를 더한다.

이제 여유로움은 끝났다. 바로 악명 높은 사다리병창으로 들어선다. ‘사다리처럼 깎아지른 벼랑’이라는 곳이다. 산행 난도는 ‘매우 어려움’이다. 처음부터 기나긴 데크계단이다. 이어 돌계단, 통나무계단, 철계단 등 계단의 연속이다. 암릉 옆에 쇠 난간이 있는 곳에 다다르면 사다리병창이 실감난다.

힘들게 오르지만 말등바위 전망대에 이르면 피로가 한 순간에 풀린다. 넓게 펼쳐진 풍경이 그동안 수고를 보상해준다. 아래로는 지나온 구룡골이, 위로는 치악산 봉우리들이 화려한 가을을 뽐내고 있다. 멀리 홍천의 공작산·가리산 등이 구름 위로 살짝 얼굴을 내밀고 있다.

마지막 데크계단을 오르면 비로봉 돌탑과 만난다. 전망대에 서면 산등성이 너머에 원주 시내 빌딩과 아파트들이 들어서 있다. 그 왼쪽으로 남대봉까지 치악산 주릉이 역동적으로 이어진다. 북쪽과 동쪽으로는 강원도의 산들이 마루금을 이어간다. 산과 산 사이에는 구름이 너울댄다.

내려오는 길은 계곡길을 따랐다. 커다란 돌들이 깔린 급경사 너덜길이 대부분이다. 자칫 발을 헛디디면 크게 다칠 수 있어 조심조심 내려섰다. 세렴폭포 조금 못 미친 곳에서 물소리 요란한 폭포를 만난다. 칠석폭포다.

치악산이 힘들다면 여유롭게 즐길 수 있는 간현관광지 내 소금산 그랜드밸리로 가면 된다. 입구에서 출렁다리, 데크산책로, 소금잔도, 스카이타워, 울렁다리, 등산로 등으로 이어지는 일방통행으로 약 2시간이 걸린다.

578개의 계단을 오르면 출렁다리다. 100m 높이의 출렁다리와 구멍이 뚫려 아래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다리가 아찔함을 안겨준다. 이어 숲 속 데크산책로를 지나면 소금잔도다. 소금산 정상부 아래 절벽을 끼고도는 고도 225m, 길이 353m의 짜릿한 벼랑길이다. 소금산 그랜드밸리의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잔도가 끝나면 스카이타워가 다가온다. 5층으로 구성된 스카이타워의 높이는 38.5m다. 소금산을 휘감아 도는 삼산천의 아름다운 절경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는 전망대다.

왼쪽 소금잔도 아래 스카이타워 오른쪽으로 울렁다리와 그 너머 출렁다리를 갖춘 소금산 그랜드밸리.

바로 아래 최근 개통한 울렁다리가 웅장하다. ‘V’자 형태의 노란색 기둥이 떠받치는 울렁다리는 길이 404m, 높이 200m가 넘는 공중을 지난다. 울렁다리를 건너면 임시로 조성된 산길을 따라 내려선다. 옆에는 에스컬레이터 공사가 진행 중이다.

내려서면 미디어파사드 공연장이 있다. 출렁다리 아래 바위를 배경 삼아 조성된 공연장에서는 밤마다 ‘나오라쇼(Night of Light Show)’가 펼쳐진다. 가로 250m, 세로 70m 크기의 자연 암벽에다 빔 프로젝트를 활용해 입체 영상을 투사하는 방식이다. 원주의 대표적인 보은 설화인 ‘은혜 갚은 꿩’을 소재로 한 영상물과 최대 60m까지 쏘아 올리는 형형색색의 음악분수 쇼 등이 펼쳐진다.

키 32m, 둘레 16m 웅장한 반계리 은행나무.

단풍을 즐기기 위해 산을 찾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원주시 문막읍에 자리한 천연기념물 ‘반계리 은행나무’는 단 한 그루의 존재만으로 가을 정취를 물씬 느끼게 해준다. 수령 800~1000년으로 추정되는 은행나무는 키 32m, 둘레 16m에 달할 정도로 웅장함을 자랑한다. 한 뿌리에서 난 여섯 갈래의 줄기가 경쟁하듯 자라 사방으로 펼쳐진 나뭇가지의 모습이 장관이다. 동서 방향으로 35m, 남북으로 34m나 된다.

여행메모
전체 길이 139㎞ 치악산 둘레길… 나오라쇼 10월 한 달 무료 운영

'은혜 갚은 꿩'을 소재로 한 나오라쇼.

영동고속도로 새말나들목에서 빠지면 횡성군 안흥면을 거쳐 치악산으로 연결된다. 치악산 등산로는 다양하다. 원주시내에서 가까운 황골과 행구동, 또는 횡성의 부곡에서 오르는 코스도 있다. 구룡계곡에서 상원사를 거쳐 성황림까지 21㎞가 넘고 10시간쯤 걸리는 종주코스도 있다. 구룡계곡과 금대계곡 입구에는 다양한 시설이 구비된 현대식 야영장이 있어 캠핑족에게 인기다.

정상이 부담스러우면 둘레길을 걸어도 좋다. 전체 길이는 무려 139.2㎞. 이 길을 짧게는 7㎞에서 길게는 26.5㎞까지 11개 코스로 나눴다. 둘레길 곳곳마다 소박한 삶의 체취와 역사의 숨결을 만날 수 있다.

소금산 그랜드밸리 이용시간은 하절기(5~10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동절기(11~4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다. 요금은 어른 9000원, 어린이 5000원이다. 나오라쇼는 지난 8월 집중호우로 인해 중단된 뒤 지난 1일 재개장해 10월 한달 간 무료로 운영중이다. 빨라진 일몰시간을 고려해 기존 오후 8시30분에서 30분 앞당겨 8시부터 50분 간 운영한다. 반계리 은행나무는 영동고속도로 문막나들목에서 가깝다.



원주=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