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진타오 전 중국 국가주석은 2012년 11월 공산당 18차 전국대표대회(당 대회)를 끝으로 당 총서기와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이듬해 3월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국가주석직도 내려놨다. 총서기와 국가주석에서 물러나더라도 한동안 중앙군사위 주석 자리를 지키며 막후 영향력을 행사했던 전임 최고 지도자들의 전례를 처음으로 깼다. 그 덕에 시진핑 국가주석은 당·정·군을 모두 장악한 상태에서 집권 1기를 시작했다. 18차 당 대회 직후 열린 중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총서기에 선출된 시진핑이 전임 후진타오의 손을 맞잡고 환하게 웃던 장면은 이상적인 권력 교체의 모습으로 남았다. 그러나 후진타오가 만든 집권 10년 공직 완전 퇴임 전례는 전통이 되지 못했다. 2017년 10월 시진핑 집권 2기 시작과 동시에 깨졌다.
시진핑 3기의 시작을 알린 20차 당 대회가 지난 22일 폐막했다. 두고두고 기억될 장면은 폐막식에 참석한 후진타오가 행사 도중 끌려 나가다시피 퇴장한 것이다. 관영 신화통신은 그날 밤 트위터 영문 계정을 통해 후진타오가 건강 문제 때문에 자리를 떴다고 주장했지만 그게 아님을 보여주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현장을 촬영한 영상을 보면 후진타오가 책상 위에 놓여 있던 붉은색 서류를 열어보려 하자 옆에 앉아 있던 리잔수 전인대 위원장이 해당 서류를 슬쩍 자기 쪽으로 가져갔다. 시진핑 최측근인 리잔수는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는 후진타오에게 무언가 설명하고, 이를 지켜보던 시진핑이 눈짓을 하자 당 중앙판공청의 쿵사오쉰 부주임이 다가왔다. 이어 경호원으로 보이는 한 남성이 후진타오 뒤로 다가와 겨드랑이에 팔을 끼워 일으켜 세웠다. 후진타오는 일어나지 않으려 하다가 결국 이끌려 퇴장했다.
후진타오의 퇴장은 시진핑을 견제할 세력이 아무도 없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실제로 후진타오가 격대지정 전통에 따라 차기 후계자로 낙점했던 후춘화 부총리는 정치국원에서 중앙위원으로 강등됐다. 후진타오를 배출한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출신 리커창 총리와 왕양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주석은 불문의 은퇴 연령인 68세가 안 됐는데도 물러나게 됐다.
집권 3기 최고 지도부를 측근들로 채운 시진핑은 2035년까지 사회주의 현대화를 실현한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시진핑의 시선은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100년이 되는 2049년에까지 가 있다. 시진핑의 20차 당 대회 업무보고 첫 제목도 ‘지난 5년간의 업무와 새로운 10년의 위대한 변혁’이다. 시진핑이 최소 3연임을 넘어 종신 집권을 노리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시진핑은 두 번째 100년 목표를 향하는 새로운 여정에 각종 도전과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것이 모두 외부 탄압과 견제에서 비롯됐다고 강조했다. 외부 적에 맞서 자신을 중심으로 당과 인민이 단결하고 분투해야 한다는 논리다. 또 내부적으로는 당을 엄정하게 다스려 자아혁명에 활력을 불어넣겠다고 강조했다. 이는 반부패 사정을 늦추지 않겠다는 뜻이다. 안으로는 통제, 밖으로는 대립의 길을 갈 것임을 예고했다. 그나마 시진핑 사단을 견제해온 후진타오계가 몰락하면서 시진핑은 브레이크 없는 운전대를 쥐게 됐다. 시진핑이 무엇을 결심하고 행동에 옮길지가 중국뿐 아니라 국제사회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이란 점이 우려스럽다.
좋든 싫든 중국은 미국과 패권을 다투는 세계 2위 경제 대국이다. 미국은 중국을 ‘국제질서를 재편하려는 의도와 그럴 만한 경제적 외교적 군사적 기술적 역량을 가진 유일한 경쟁국’으로 규정했다. 그런 나라가 한 사람의 생각과 야망에 의해 움직이는 건 비극적인 일이다.
권지혜 베이징 특파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