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0년대 아일랜드의 한 백작 영지 관리인인 찰스 보이콧은 악명 높기로 소문났다. 대기근으로 인해 소작료를 깎아달라는 소작농을 쫓아내는 등 탄압하고 학대했다. 그러자 소작농과 상인 등이 똘똘 뭉쳐 농장 일을 거부하거나 보이콧에게 먹을 것 등 물건 판매를 거부하면서 맞섰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집단의 거부운동 ‘보이콧’이 보이콧당한 이에서 유래된 셈이다.
보이콧이 역사나 정책의 흐름을 바꾸는 경우가 종종 있다. 식민지 미국에서 발생한 영국 동인도 회사 차(茶) 불매운동은 독립전쟁의 불씨였다. 1950년대 미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은 인종차별 철폐 운동의 한 획을 그었다. 정치 사회 분야에만 그치지 않는다.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규탄하며 서방 국가들이 참가 거부한 1980 모스크바 올림픽은 구소련 리더십에 타격을 줬다. 가깝게는 지난 2월 중국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미국 일본 캐나다 등 일부 국가들이 정부 대표단을 보내지 않는 ‘외교적 보이콧’을 택했다. 중국 내 인권 침해에 항의하는 차원이었다.
하지만 모든 보이콧이 효과를 내지는 않는다.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선 시기·장소를 잘 선택해야 하고 희소가치성이 있어야 하며 무엇보다 민심의 지지를 끌어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안하니만 못하는 게 한국 정당들의 보이콧이다. 지난 20대 국회에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은 국회 본회의와 주요 상임위에 17회 불참했다. 보수 정권인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선 더불어민주당이 60차례 보이콧을 단행했다. 야당이 압도적으로 많아 정부·여당에 대한 상습적 파업을 연상케 한다. 2000년부터 2019년까지 양당의 보이콧 횟수가 200회에 육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25일 민주당이 대통령 국회 시정연설에 불참했다. 헌정 사상 처음이라는 타이틀을 얻었지만 진영 아닌 국민의 박수를 받을지는 모르겠다. 민주당은 야당 탄압 반대를 외치며 보이콧했는데 ‘당 대표 방탄’용으로 해석하는 국민이 적지 않다. 원래는 왕따와 기피 대상인 원조 보이콧이 21세기 한국 국회에 너무 많은 것 같아 씁쓸하다.
고세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