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빌딩, 숲’

입력 2022-10-26 04:06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한창 주가를 올리던 지난 8월, 서울 종로구청 앞 로터리 어귀에 거대한 팽나무 한 그루가 이사왔다. 드라마에 출연한 500살 팽나무와 비교해도 조카뻘은 될 거목. 따뜻한 남부지방에 주로 자라는 팽나무를 이젠 서울에서도 자주 본다. 특히 광화문에서 시청과 남대문을 거쳐 서울역까지, 최근 2년간 광화문광장과 세종대로 사람숲길을 만들면서 서울시는 구간마다 커다란 팽나무를 새로 심었다. 기후 온난화가 심해져 중부지방 대표 정자목이던 느티나무 하자율이 높아졌고 대타로 남쪽에서 팽나무가 여럿 상경한 것인데, 가지의 뻗음이 크고 여유로운 데다 노란 단풍이 퍽이나 매력적이다.

팽나무의 이사는 광화문 KT 이스트(East) 빌딩 1층과 주변 공공 보행로를 숲으로 변모시킨 ‘KT 디지코 가든(KT Digico Garden)’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 결과적으로 빌딩 서쪽은 중학천변 버드나무숲과 끝단의 팽나무로, 남쪽은 화사한 배롱나무숲과 야외테이블로, 동측과 북측은 이팝나무숲으로 만들어졌다. 내부로 빽빽하고 낮은 숲 언덕이 자리해 오솔길과 데크길로 오르내리는 비밀의 정원이 됐다. 누구나 또 언제나 즐길 수 있는 ‘빌딩, 숲’이다. 당초 벽화 프로젝트가 숲 프로젝트로 바뀐 건 광화문광장과 세종대로 사람숲길을 설계한 조용준 조경가가 뛰어들면서다. 그는 인근 광화문광장과 연결된 빽빽한 숲 위에 세계적 건축가인 렌조 피아노의 날아갈 듯 가벼운 느낌의 빌딩이 떠 있는 풍경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건축 허가 기준의 최소한도로, 아무 맥락 없이, 형편없는 나무를, 무성의하게 꽂는 싸구려 건축물 조경은 결국 건물 브랜드와 함께 도시 브랜드를 싸구려로 만든다. 빌딩숲이 아니라 빌딩 사이사이가 숲이 돼 서로 연결되고 직장인과 산책자는 물론 새와 벌과 나비를 품는 ‘빌딩, 숲’이 돼야 하는 이유다. 이 숲이 빌딩을 살리고 도시를 살리고 결국 지구를 살릴 것이다.

온수진 양천구 공원녹지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