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C그룹 계열사 SPL 평택공장에서 숨진 20대 근로자처럼 식품 가공용 혼합기 작업 도중 사망한 노동자가 최근 5년새 6명으로 파악됐다. 이런 참극은 영세 사업장에서 안전장치가 미비한 기계에 사고를 당한 경우가 상당수였다. 더 빨리 병원으로 이송됐다면 근로자가 사망하지 않았을 사례도 있었다.
국민일보가 24일 입수한 고용노동부의 최근 5년간(2017~2021년) 식품가공용 혼합기 사망사고 현황에 따르면 사고가 발생한 6개 사업장 중 2곳은 사원 수가 10명도 되지 않는 영세 사업장인 것으로 나타났다. 상시근로자가 50명 이상인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 사업장으로 확인된 건 한 곳뿐이었다. 사원 수가 공개되지 않은 나머지 업체의 사업장 규모를 감안하면 거의 모두 영세 사업장일 것으로 추정된다. 사고 유형별로는 끼임이 5건으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2020년 9월 경북 소재 제분 공장에서 숨진 40대 A씨는 작업이 없던 날 고춧가루 혼합기를 청소하다 사고를 당했다. 기계 소리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다른 직원이 점검차 스위치를 올렸는데 이를 모르고 기계 안쪽을 청소하던 A씨가 변을 당했다.
2017년 11월 충북의 누룽지 제조공장에선 50대 여성 B씨가 쌀 혼합기와 연결된 분쇄기에 빨려들어가는 사고로 사망했다. 가로 40㎝ 세로 50㎝ 크기의 해당 분쇄기엔 망이 설치돼 있었지만, 사고 당시 B씨는 망을 들춰내고 안에 손을 넣었다가 사고를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 당시 이들은 현장에서 즉사하지 않았다. A씨는 중상을 입어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숨졌다. B씨 역시 사고 소식을 듣고 달려온 남편이 기계를 넘어뜨려 빼내고 병원으로 옮겼지만 과다출혈로 숨진 것으로 조사됐다. 2인 1조 작업 등으로 사고 발생 사실을 더 일찍 인지했다면 사망으로까지 이어지지 않았을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조현지 노무법인 조인스 노무사는 “끼임사고 상당수는 즉시 사망으로 이어지지 않는 만큼 조기 발견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사고 발생 시 ‘골든타임’ 안에 환자가 치료받을 수 있도록 119 신고부터 하는 등의 매뉴얼을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안전장치가 미흡했거나, 기계의 위험성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작업을 하다 사고를 당하기도 했다. B씨가 사고를 당한 분쇄기는 안전용 망을 들어내더라도 작동이 멈추지 않는 구조였다. A씨의 경우 혼합기엔 안전장치가 설치돼 있었으나, 통상 작업이 아닌 청소 도중 불시에 기계를 동작시키면서 사고가 났다.
현장에선 제2, 제3의 SPL 사고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실제 최근 5년간 식품가공용 혼합기로 인한 부상자는 299명으로, 이 중 190명(63.5%)이 90일 이상 휴업을 할 정도의 부상을 입었다.
특히 비용 문제 등을 이유로 안전조치를 간과하기 쉬운 영세 사업장에 대해선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관심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충남 천안의 한 식품공장에서 근무하는 C씨는 “배합공정 기계에 자동방호장치가 없고 워낙 설비가 노후해 언제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지 모른다”며 “사측에 ‘기계 안전성 검사를 해 달라’고 꾸준히 건의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현재순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노동안전실장은 “지자체가 조례를 통해 영세사업장이 안전조치를 마련할 수 있도록 재정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경모 신지호 기자 ss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