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청이 경찰관의 성비위 징계 수위를 은근슬쩍 낮춘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청은 2017년 성범죄 등 기강해이 사례가 잇따르자 성비위 징계 양정을 높였지만 타 기관보다 수위가 높다는 내부 불만이 나오자 4년 만에 다시 수위를 내린 것으로 보인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이해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23일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경찰청은 지난해 9월 ‘경찰공무원 징계령 세부시행규칙’을 개정했다. 기존 규칙은 성폭력 범죄에 대한 징계 하한이 ‘해임’으로 돼 있었지만, 규칙 개정으로 일부 성폭력 범죄 유형에 대해서는 정직 처분도 가능하도록 완화하는 내용이었다.
개정된 규칙은 ‘미성년자 또는 장애인 대상 성폭력 범죄’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성폭력 범죄’인 경우에만 최소 징계 기준을 해임으로 유지했다. 대신 ‘공연 음란 행위’ ‘통신 매체를 이용한 음란 행위’ ‘카메라 등 이용 촬영 행위’ 등에 대해서는 해임의 2단계 아래인 ‘정직’ 이상의 처분을 하도록 규정했다.
이에 따라 올해 1~8월 징계가 이뤄진 18건의 성폭력 사건 중 8건의 행위자는 강등 이하의 징계를 받았다. 기존 징계 규정이 적용되면 전원 해임 이상에 해당하는 사유지만, 규칙 개정으로 징계 수위가 낮아진 것이다.
경찰청은 앞서 2017년 9월 성비위 등 고강도 근절 대책을 발표하면서 성비위 징계 하한을 해임으로 상향 조정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후 다른 부처에 비해 징계 수위가 상대적으로 높다는 지적 등이 나오자 징계 수위를 다시 조정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강화된 징계 기준을 적용하다 보니 전후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일률적으로 해임 조치하는 게 적절하느냐는 의견이 있었다”며 “인사혁신처의 공무원 징계령 시행규칙에 맞춰 성비위 징계 기준을 합리적으로 세분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이 의원은 “징계양정 기준을 지키지 않는 문제를 질타했더니 징계양정 자체를 하향 조정했다”며 “이는 성비위 경찰에게 ‘셀프 면죄부’를 주는 것으로 경찰 조직 내 성비위 척결 의지가 퇴보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판 기자 p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