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돌 같은 인생도 주님은 쓰십니다 어려움 있더라도 믿음 갖고 희망을 품길”

입력 2022-10-24 03:04
임용근(오른쪽) 전 미국 의회 의원이 지난 20일 서울 종로구 한 음식점에서 아내 임영희 여사와 함께 자신의 저서를 든 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스트롱 페이스(Strong faith·강한 믿음)!”라고 외치는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지난 삶을 반추하며 이야기를 풀어낼 때마다 노(老)신사의 재킷 상의에 붙은 한·미 양국 국기 모양 배지가 빛났다. 미국 이민 1세대 최초로 1992년 상원의원으로 선출된 뒤 상·하원에서 5선 의원을 지낸 임용근(87·미국명 존 림) 전 오리건주의회 상원의원이다.

임 전 의원은 지난 20일 서울 종로구 한 음식점에서 자서전 ‘버려진 돌 임용근 스토리-청소부에서 미국 오리건주 상·하원 5선까지’ 출간기념 간담회를 열었다. 그는 “오로지 신앙, 믿음 하나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그의 고백에 함께 자리한 아내 임영희씨도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임 전 의원은 열네 살이던 6·25전쟁 당시 빨갱이로 몰린 부친이 총살당한 이야기부터 로버트 모건 전 한국컴패션 대표와의 인연으로 도미한 이야기, 이후 정착해 사업체를 일구고 상·하원 의원에 오르기까지의 여정을 풀어냈다.

그의 삶을 관통하는 단어는 자서전 제목처럼 ‘버려진 돌’이다. ‘아메리칸 드림’의 전형으로 알려진 그이지만, 과거 그의 삶은 성경에 나오는 말처럼 ‘건축자들에 의해 버려진 돌’ 같았다. 그는 “부친이 억울하게 돌아가시고 연좌제로 가족 전체가 빨갱이로 몰렸을 때, 처음으로 국가에 의해 버려진 돌(rejected stone)’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책에는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미군 부대에서 궂은일을 하던 그가 1966년 미국으로 건너가 청소와 세탁 등을 닥치는 대로 하면서 이뤄낸 ‘아메리칸 드림’이 담겼다. 이방인이 정치인으로 성장해 나가기까지 몸소 겪은 한인 이민사도 고스란히 녹아있다.

임 전 의원이 90년 가까운 삶을 살며 깨달은 교훈은 무엇일까. 그는 “세상 모든 일은 조그마한 것에서 시작되더라”고 했다. 17살 시절 7년 넘게 폐결핵을 앓으면서도 부단히 암기했던 영어 단어는 그의 실력이 됐고, 훗날 미국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 힘이 됐다.

서울신학대를 졸업한 후 경기도 여주 능서교회를 개척해 전도사로 사역하던 당시 그의 교회는 한국컴패션의 후원을 받았다. 한국컴패션이 주최한 사경회에서 모건 대표를 만난 그는 영어로 감사 인사를 전했다. 이 짧은 만남을 기억하고 영어 실력을 눈여겨본 모건 대표는 컴패션 후원 아동으로 구성된 중창단의 미국여행 인솔과 통역을 맡아 달라고 제안했다. 그렇게 시작한 4주 여행 중 그는 웨스턴복음주의신학교(WES)에 원서를 내게 됐고 유학과 함께 미국에서의 삶도 시작됐다.

그는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나도 모르는 어떤 큰손이 직간접적으로 내 삶을 인도하셨다는 걸,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이뤄진 것이란 걸 깨닫게 됐다”고 고백했다. 숱한 역경 끝에 지금의 자리에 올랐지만 임 전 의원은 이를 성공이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는 “성공은 한 사람의 인생이 끝날 때 타인이 판단하는 일”이라며 “아홉 살 때 교회를 나가면서 만난 하나님, 그의 말씀이 내 삶에 없었다면 성공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젊은세대에 해주고 싶은 말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 “버려진 돌이라도 하나님은 요긴하게 쓰십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오직 예수님만 믿으며 희망을 품길 바랍니다. 스트롱 페이스!”

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