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물건이란 무엇일까요? 소비만능시대라지만 물건을 살 때 ‘버릴 순간’을 먼저 고민하는 소비자도 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변화는 한 쪽의 노력만으로 이뤄지지 않습니다. 제품 생산과 판매단계를 담당하는 기업들의 노력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굿굿즈]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새로운 시도를 하는 기업과 제품을 소개하고, 꾸준히 지켜보려 합니다.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들기 위한 노력에 더 많은 참여를 기대합니다.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친환경 노력은 어떤 게 있을까. 많은 이들이 ‘더 사지 않고, 최대한 오래 쓰고, 가급적 버리지 않는 것’을 최선의 해법으로 제시한다. 하지만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사회에서 편리한 삶을 계속 살아가려면 실천이 쉽지 않다.
유통업계에서 친환경은 더 까다롭다. 물건을 파는 곳에서 ‘더 사지 않고’라는 가치를 추구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최대한 오래 쓰고’라는 말도 유통 환경에서는 반갑지 않은 신념일 테다. 유통업계의 친환경 노력이 어려울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유통업계는 기후대응을 포기해야 할까.
아직 어느 기업도 ‘정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의미 있는 시도를 이어가면서 유통기업의 지속가능성을 선도하는 기업이 있다. 2030년에 기후안심기업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구석구석에서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이케아가 그곳이다. 플라스틱 포장재 사용을 10% 미만으로 줄였고, 매장에서 사용하는 에너지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는 식이다.
허울뿐인 친환경에 갇히지 않기 위해 이 회사는 대표에게 최고지속가능성책임자(CSO)를 겸임하게 한다. 프레드릭 요한손 이케아코리아 대표의 명함에도 CSO라는 직함이 함께 찍혀 있다.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게 이케아 경영의 핵심 가치임을 선언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이케아의 지속가능경영은 디테일에서 확인된다. 경영진이 제시하는 ‘큰 그림’이 매장 곳곳에서 구현된다. 그 디테일에 대한 궁금증을 품고 지난 17일 경기도 광명시 이케아 광명점을 찾았다. 이케아 광명점에서 지속가능경영과 관련한 업무를 담당하는 서은아 커머셜 액티비티 리더, 안소정 리커버리 매니저, 옥종욱 푸드 매니저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케아 광명점에서 가장 눈에 띄는 공간은 도심형 농장 ‘파르마레’다. 연간 약 2t의 채소를 수확하는 이 농장은 2020년 8월에 전 세계 이케아 최초로 매장 안에 꾸려진 스마트팜이다. 바로 옆 레스토랑의 셰프이기도 하고 스마트팜의 농부이기도 한 옥종욱 매니저는 파르마레의 장점을 이렇게 설명했다.
“땅에서 농사를 지을 때 물을 주면, 작물이 흡수하는 건 10% 정도밖에 안 된다고 해요. 90%는 땅에 흡수되는 거죠. 수경재배의 장점은 물 낭비를 최소한으로 할 수 있다는 겁니다. 파르마레는 4층짜리 모판으로 운영되는데 4층에서 물을 주면 1층까지 닿고도 남아서 다시 순환이 가능해지는 식이에요. 깨끗한 환경에서 농약을 쓰지 않고 안정적으로 재배해 레스토랑에 바로 공급할 수 있습니다.”
옥 매니저는 “파르마레 같은 스마트팜을 매장 안에서 운영하려면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했다. 경영진 의지, 공간, 이런 시설을 제공할 수 있는 업체. 이케아는 운좋게도 세 가지를 모두 갖췄다. 경영진 의지와 공간이 확보된 상태에서 시설 업체를 찾으면서 파르마레 운영이 성사됐다. 레스토랑과 직원식당에서 사용하는 채소의 30%는 파르마레에서 수확한 것들이다. 이케아 광명점은 이 규모를 확대하고 채소 상품 판매도 고려하고 있다.
창 너머 초록 잎이 푸릇푸릇하게 펼쳐진 파르마레를 등지고 이케아 매장을 돌아보면 보통 쇼핑몰과 다른 풍경이 보인다. 일상에서 친환경을 실천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해주는 ‘지속가능 리빙샵’, 흠집이 있거나 사용했던 제품을 버리지 않고 다시 사용할 수 있게 판매를 중개하는 ‘자원순환 허브’ 등이 색다른 공간이다.
‘지속가능 리빙샵’은 지난해 12월 처음으로 문을 열었다. 이케아 광명점에서 가장 많은 손님이 오가는 지점에 들어섰다. 일상에서 어떻게 지속가능성을 실천할 수 있는지 구체적 방안을 제시해주면서 합리적인 가격대의 제품도 소개한다. 물 낭비를 막는 수전, 전력 사용량이 현저히 낮은 전구, 재활용 플라스틱으로 생산한 제품 등이 있다. 소비자들의 관심이 ‘지속가능 리빙샵’에도 머무는지 서은아 리더에게 물었다.
“지나가는 고객의 57% 정도는 멈춰서거나 들어가서 살펴보세요. 그 가운데 20% 정도는 직접 제품을 카트에 담고요. 주로 40~50대 여성 소비자가 많습니다. 친환경에 관심은 많은데 어떻게 하면 좋은지 고민스러울 때, 방법을 제시해주는 곳이 ‘지속가능 리빙샵’이에요.”
서 리더는 “첫 선을 보일 때 이케아 글로벌에서 제시하는 방안을 중심으로 지속가능 리빙샵을 꾸렸지만, 다음 달에 재정비를 할 때는 좀 더 이케아코리아 스타일로 접근할 계획”이라고 했다. 한국인의 생활방식에 걸맞은, 국내 소비자에게 유용한 제품과 친환경 방안을 제시하겠다는 생각이다.
이케아에서는 ‘자원순환 허브’도 따로 마련해 중고제품을 판다. 전시, 환불, 단종, 경미한 손상, 포장 훼손된 상품을 포함해 소비자로부터 다시 사들인(바이백) 이케아 제품까지 파는 공간이다. 이 업무에 투입된 안소정 매니저는 “이케아에서는 허투루 버려지는 게 없다는 걸 보여주는 코너가 자원순환 허브”라고 설명했다. 그는 “친환경을 실천하는 방안 중에 ‘버리지 않는 것’이 있잖아요. 거기에서 착안했어요. 완벽하게 새 제품이 아닌 것을 15~90%까지 할인 판매하면서 자원 낭비도 줄이고 경제적인 소비도 가능해지죠. ‘자원의 선순환’에 대한 메시지도 전할 수 있고요”라고 말했다.
친환경 업무는 일을 하는 사람에게도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게 세 사람의 공통된 얘기다. “오래 쓸 수 있는 제품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안소정), “소비를 하게 만드는 회사지만 건강한 소비와 의미 있는 소비에 앞장서는 기쁨과 만족감이 있다”(서은아)고 했다. 옥 매니저의 말은 인상적이었다. “‘작물은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이 있는데요. 아껴줘야 하고 살뜰히 보살펴야 잘 자라요. 농장 일을 겸하다보면 기존 업무의 스트레스가 줄어드는 기분이 드는 게 묘한 지점이에요.”
광명=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