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싱을 하다 팔을 다쳐서 정형외과에 갔던 적이 있다. 연습 중 상대의 주먹에 팔꿈치를 잘못 맞은 것 같았는데 며칠이 지나도 통증이 가라앉지 않았다. 사실 비슷하게 다친 적이 몇 번 있었지만 모른 척하던 중이었다. 이런 위험한 운동은 그만두라는 처방을 받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느낌이 예사롭지 않아 결국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내 팔을 이곳저곳 만져보더니 혹시 엄지손가락을 구부리면 손목에 닿느냐고 물었다. 오른손 엄지를 왼손으로 꾹 누르자 어렵지 않게 손목에 손가락이 닿았다. 의사는 자신의 엄지를 들어 보여주면서 보통은 절대 손목에 닿지 않는다고 했다. 반대쪽 손에 눌린 그의 손가락은 더 이상 구부러지지 않고 허공에서 뻣뻣하게 멈춰 있었다. 인대를 이루는 구성 성분의 차이 때문인데, 백 명 중 두 명 정도는 일반적인 사람들보다 부드러운 물질로 인대가 이뤄져 있어 몸이 더 많이 구부러지고 더 많이 벌어진다고 했다.
의사는 내게 팔을 벌려보라 말하며 자신의 팔을 벌려 비교할 수 있도록 해줬다. 내 팔이 확연히 더 뒤로 젖혀져 있었다. 이렇게 부드러운 인대를 가진 사람들은 쉽게 다치는 대신 관절염에 걸리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당장 복싱을 관두라고 했다. 정말 그래야 하나요? 조금 슬픈 표정으로 물었지만 의사는 단호했다. 남들보다 몇 배는 부상이 잦을 거라며 수영이나 요가 같이 안전한 운동을 권했다. 어쩐지 다칠 만큼의 충격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팔이 너무 아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보통은 다치지 않을 수 있었을 많은 일을 너무 아프게 느껴왔다는 생각을 했다.
의사는 인대가 그렇게 된 데에는 이유가 없으며 그냥 그렇게 태어난 것이라고 말했다. 그냥 그렇게 태어났기 때문에 부상을 입었던 날들이 머릿속에 수없이 떠올랐다. 정신의 어떤 부위도 남들과는 다른 물질로 이뤄져 있을 거라고, 그냥 그렇게 태어난 거라고 생각하자 조금 억울한 동시에 약간 편안해졌다.
김선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