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착취로 평생 고통… 선감학원 피해자들 40년 만에 한 풀다

입력 2022-10-21 04:06
김동연(오른쪽) 경기지사가 20일 서울 중구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열린 선감학원 아동 인권침해 사건 진실규명 결정 발표 기자회견장을 찾아 피해자의 손을 잡고 사과와 위로를 전하고 있다. 이한결 기자

부랑아 수용을 명목으로 아동 수천명을 강제노역 시켰던 선감학원 사건에 대해 국가가 처음으로 “공권력에 의한 인권침해 사건”으로 규정했다. 경기도는 사과와 함께 피해자·유족에 대한 보상비 등 지원대책을 약속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일 서울 중구 진실화해위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선감학원 사건은 강제노동, 가혹행위, 성폭력, 생명권의 침해 등이 발생한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이라며 “선감학원의 행위는 아동들이 교육을 통해 사회에 역할을 하도록 돕는 것이 아니라 아동을 무능화하는 과정이었다”고 밝혔다. 이는 선감학원이 1982년 폐원된 지 40년 만에 내려진 국가 차원의 첫 진실규명이다.

선감학원사건은 1942년부터 1982년까지 약 5000명의 아동을 부랑아 교화를 이유로 경기도 안산 인근 선감학원에 수용하고 강제노역에 투입한 사건이다.

진실화해위는 정부가 선감학원에 불특정 아동을 가둔 행위가 법적 근거와 절차 없이 이뤄졌다고 봤다. 정근식 진실화해위 위원장은 “선감학원 사건은 정부의 부랑아 정책에 따라 경찰 등 공권력이 적극 개입해 불특정 아동을 법적 근거와 절차 없이 강제로 가뒀다”며 “수용자 전원은 아동 인권침해 사건의 피해자로 인정된다”고 말했다. 수용 아동 규모는 입·퇴소 연도 및 생년이 확인된 4674건의 원아대장 분석을 근거로 5000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했다.

사망자 숫자도 추가로 확인됐다. 당초 선감학원 원아대장상에는 사망자가 24명으로 기록돼 있었지만, 진실화해위가 선감초등학교 생활기록부를 분석한 결과 사망자는 5명 더 있었다. 800여명이 넘었던 탈출 아동 수를 고려하면 희생자 규모는 더 클 수 있다. 사망자가 최소 140~150명에 이를 것으로 진실화해위는 본다. 진실화해위는 “굶주림과 폭력, 강제노동에 시달리던 원생들이 섬에서 탈출을 시도했지만, 선감도 주변 물살이 세고 수심이 깊어 상당수가 익사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이번 조사에서 진실화해위는 암매장된 유해도 확인했다. 선감도에 있는 매장지에서 시굴을 진행해 16~28세로 추정되는 치아 68개와 단추 6개 등을 발견했다. 진실규명을 신청한 생존 피해자 중 다수가 이곳을 암매장지로 지목했다.

부랑아 대책을 주도했던 정부 부처와 부랑아 단속에 나선 경찰, 선감학원을 운영한 경기도에 인권유린 책임이 있다고도 지적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심각한 국가폭력으로 크나큰 고통을 겪은 생존 피해자와 유가족 여러분께 경기도지사로서 깊은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경기도는 책임 있는 자세로 피해자 분들의 상처 치유와 명예 회복 지원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지사는 피해자 생활안정지원금 지급, 피해자 지원센터 설치, 의료서비스 지원, 선감학원 추모비 설치 등 대책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또 피해자와 유가족을 위한 피해 배상 및 보상특별법이 조속히 제정될 수 있도록 국회와 정부에 촉구하기로 했다.

신지호 기자, 수원=강희청 기자 p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