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일터 안전의 비용편익

입력 2022-10-21 04:02

1970년대 출시된 미국 포드자동차의 핀토는 기업윤리와 공학윤리를 다룰 때 자주 소환되는 사례다. 오일 쇼크로 기름값이 치솟을 때 출시된 소형차 핀토는 적잖은 인기를 끌었다. 치명적 결함도 있었다. 후방 충돌 시 연료탱크가 폭발하는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놀라운 것은 회사가 이 결함을 알고도 시정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감춰져 있던 진실은 폭발 사고 피해자들이 제기한 재판 과정에서 세상에 알려졌다.

‘그러시·사운비 보고서’로 알려진 내부 보고서는 포드의 손익 계산을 구체적으로 드러냈다. 포드는 핀토 1대당 연료탱크 수리비를 11달러로 책정하고, 전체 1250만대의 결함을 해결하는 데 1억3750만 달러가 필요하다고 계산했다. 반면 전체 수리 시 편익은 4953만 달러로 집계했다. 4953만 달러엔 사망자 180명(인당 20만 달러), 부상자 180명(인당 6만7000달러), 결함에 따른 차량 수리비(대당 700달러)가 포함됐다. 즉 결함을 시정하지 않았을 때 발생하는 사망자·부상자 배상 등에 훨씬 더 적은 비용이 든다고 보고 결함을 시정하지 않은 것이다.

국내에서 지난해 산업재해(사고·질병)로 사망한 이는 모두 2080명이다. 2016년 1777명까지 줄었으나 2018년 2000명을 넘긴 후 다시 2000명 아래로 내려가지 못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에만 1142명이 사망했다. 산재 중 사고 사망은 상대적으로 감소세가 유지되고 있지만 지난해 828명이 세상을 떠나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지난해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한국의 근로자 10만명당 산재 사망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4번째였다.

아직 매년 2000명 안팎이 일터로 인해 사망하는 현실은 우리 사회가 경제 규모나 위상에 비해 일터에서의 안전에 따른 사회적 편익을 낮춰 잡는 사회라는 방증일 수 있다. 반대로 일터에서의 안전을 달성하기 위한 사회적 비용이 크다는 목소리는 그간 상대적으로 강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구의역 김군(2016년 5월), 태안화력발전소 김용균씨(2018년 12월), 평택항 이선호씨(2021년 5월)처럼 안타까운 개인의 비극이 떠들썩하게 보도될 때마다 법과 제도를 손보고 인식 개선을 당부했지만 그때뿐인 경우가 많았다. 산재 흐름 자체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이런 배경에서 등장했다. 산업안전보건법처럼 다른 법과의 중복 문제가 있었음에도 법 취지에 방점이 찍혔다. 사고 현장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사업주, 경영책임자에게까지 책임을 묻는 것은 그만큼 최고 의사결정권자의 의지가 뒷받침돼야 현장이 변할 수 있다는 사회적 당부였다. 하지만 법 시행 전부터 개정 요구가 끊이지 않았고, 시행 후에도 손질을 요구하는 재계의 목소리가 여전히 거세다. 얼마 전엔 기획재정부가 경영책임자에 대한 처벌 수위를 크게 낮추는 것을 포함한 법·시행령 개정 의견을 고용노동부에 전달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지난 15일 SPC 계열사 SPL 평택공장에서 발생한 끼임 사망 사고는 안타까운 사연에 공감하는 것을 넘어 기업에 대한 불매운동으로까지 이어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사실 그 연결고리는 회사가 제공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사망 참사 다음 날 사고가 일어난 소스 혼합기를 흰 천으로 가린 채 한쪽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사진이 보도되고, 해외 진출 홍보 내용이 보도되자 분노가 기업을 향했다. 해외 진출을 알리는 기사 중 하나에 가장 많은 공감을 얻은 댓글은 “사람이 죽었습니다”였다. 소비자와 접점이 큰 기업이라 대중의 반응이 격할 수 있지만 제품·서비스뿐만 아니라 일터에서의 안전문제가 기업에 대한 이미지를 달리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겠다.

김현길 사회부 차장 hgkim@kmib.co.kr